[특집] 론스타 ISDS 13년 분쟁, 취소판정으로 ‘완전 종결’
6조9천억 청구·4천억 배상 위험 사라지고 소송비 73억까지 환수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13년간 이어진 론스타(Lone Star)*-대한민국 정부 간 국제투자분쟁(ISDS)*이 결국 한국 정부의 ‘완승’으로 마무리됐다. 미국 워싱턴D.C.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는 2022년 본 중재판정부가 내렸던 2억1천650만달러(이자 포함 약 4천억 원)의 배상 및 이자 지급 판정을 전면 취소하고, 그 결정 과정에서 적법절차 위반 등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 ISDS: 해외 투자자가 투자받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국제 분쟁 해결 제도
이에 따라 한국 정부의 배상 의무는 소급해 ‘0원’이 됐고, 오히려 취소절차 과정에서 지출한 약 73억 원의 소송비용을 론스타가 30일 이내에 돌려주도록 명령했다. 전 세계 ISDS 사건에서 취소가 인정되는 비율이 약 3%에 불과한 ICSID 취소심 구조를 감안하면, 이번 판정은 금융·법률·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국가 재정 리스크를 제거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1.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시도
론스타 분쟁의 출발점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위기 여파로 부실화된 외환은행을 약 1조3천억 원에 인수한 뒤, 구조조정을 거쳐 되팔면서 막대한 차익을 남길 구상을 세웠다.
문제는 매각 과정에서 불거졌다. 론스타는 2007년 HSBC에 지분을 매각하려 했으나,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과 뒤이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등으로 딜이 무산됐다.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고의적 승인 지연과 과도한 규제개입 때문에 더 높은 가격에 팔 기회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2. 6조9천억 ISDS 청구와 2022년 1차 판정
결국 론스타는 2012년 한미 투자협정(BIT)을 근거로 ICSID에 46억 8천만 달러(약 6조 9천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ISDS를 제기했다.
본 중재판정부는 장기간 심리를 거쳐 2022년 8월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당시 ICSID는 정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부당하게 지연시킨 측면이 있다고 보면서, 론스타가 요구한 금액의 일부인 2억 1천 650만 달러와 이자를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이 판정으로 한국 정부는 약 4천억 원 규모의 재정지출 가능성을 떠안게 됐다.
3. 이례적인 ‘쌍방 취소’ 요청
정부는 패소 판정 수용 대신 ICSID 취소 절차를 택했다. 이는 단순한 판정 불복을 넘어, 판정문 그 자체에 절차상·법리상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들어 “판정문을 없었던 것으로 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론스타 측도 2023년 취소 절차를 신청했다는 사실이다. 론스타는 배상액이 당초 요구액에 비해 지나치게 적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결국 양측이 모두 ‘판정 취소’를 요구하는 이례적인 구도가 형성됐고, 사건은 ICSID의 취소위원회로 넘어갔다.
1. 취소심의 높은 문턱: ‘품질 검사’의 역할
ICSID 취소심은 원래부터 문턱이 높다. 이는 판정 내용의 적절성을 다투는 상소 절차가 아니라, 판정문 자체에 구조적 결함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품질 검사’에 가깝기 때문이다. ICSID 규정상 취소 사유는 핵심 쟁점에 대한 이유 제시 부족, 적법절차 위반 등으로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전 세계 ISDS 사건 가운데 취소가 인정되는 비율은 약 3% 수준에 불과하다.
2. 결정적 취소 사유: ‘적법절차 원칙’ 중대 위반
이번 론스타 사건에서 취소위원회가 주목한 부분은 절차 위반과 이유 제시 부족이었다.
2022년 본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당사자가 아니었던 하나금융–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활용해 금융위원회의 위법행위와 국가책임을 인정했다. 취소위는 이 점을 문제 삼아 “대한민국이 참여하지 않은 별도의 상사중재 판정문을, 정부에 책임을 씌우는 핵심 근거로 삼은 것은 적법절차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결정적인 하자로 인해 금융위의 위법행위 인정, 국가책임, 인과관계, 손해 인정 부분이 연쇄적으로 취소됐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치밀한 ‘판정문 해체’ 전략: 이유 불비 공격
또 다른 축은 ‘이유 불비(Failure to State Reasons)*’였다. 한국 정부는 매각 지연의 주요 원인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외부 요인에 있었고, 감독당국의 승인 절차는 정당한 재량 행위였다는 항변을 내세웠다.
이유 불비: 판정·결정·판결에서 핵심 판단에 대한 이유(논리·근거)를 충분히 쓰지 않은 상태
그러나 판정문에는 이 항변이 어떤 기준으로 검토되었는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 대리인단은 300쪽이 넘는 판정문을 문단 단위로 ‘해체’하여, 정부 항변이 누락된 대목, 논리적 결함이 있는 부분을 체계적으로 배열해 취소위에 제시했다. 취소위는 이러한 결함이 단순 실수가 아니라 판정 전체 구조에 걸쳐 있는 문제라고 보고, 결국 기존 판정을 전면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1. 4천억 재정 리스크 제거
취소위원회의 결정으로 한국 정부의 재정 부담은 사실상 ‘제로(Zero)’가 됐다. 2022년 판정 기준으로 원금 2억1천650만달러와 이자에 해당하는 약 4천억 원 규모의 배상 책임이 소급해 완전히 사라졌다.
더 나아가 취소위는 론스타가 취소절차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지출한 소송비 약 73억 원을 30일 안에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이는 단순한 재정 방어를 넘어, 국제투자분쟁에서 국가가 국민 세금을 방어할 수 있다는 이례적인 선례를 남긴 결정이다.
2. 금융 주권 방어의 상징성
금융시장 측면에서 이번 승소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 그동안 론스타 사건은 국내에서 “투기자본의 먹튀” 논란과 함께, 금융감독 주권이 국제중재를 통해 제약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워왔다.
만약 정부가 최종 패소했다면, 향후 은행·보험사 등 핵심 금융기관의 인수·합병 승인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ISDS를 상시적 압박 도구로 활용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었다. 이번 판정으로 외환은행 매각 당시 금융당국의 승인 절차 전반이 국제투자법상 자동으로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은 피하게 됐으며, 국가의 정당한 금융 감독권을 지켜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3. 시장의 단기적 반응과 거시 변수
다만 시장이 곧바로 낙관으로만 반응하고 있지는 않다. 정부 승소 소식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는 글로벌 경기 둔화, 미 연준의 통화정책 불확실성 등 외부 거시 변수의 영향으로 변동성이 확대된 상태다.
ISDS 승소가 외환·금융시장에 구조적 안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다른 거시 변수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다. 재정 리스크 제거 효과는 명확하지만, 실물경제·금융시장 불안이 상존하는 한 이번 판정이 모든 변동성을 상쇄해 주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냉정한 평가가 요구된다.
1. ‘내용’이 아니라 ‘절차’로 이긴 분쟁
이번 사건이 국제투자법·ISDS 실무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내용이 아니라 절차로 이긴 분쟁”이라는 점이다. 취소위원회는 정부 조치의 적정성이나 손해액의 규모를 재판한 것이 아니라, 원 판정이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논리를 완결성 있게 제시했는지를 따져 판정 자체를 무효화했다.
이로써 “설령 본안에서 불리한 판정을 받더라도, 판정문에 중대한 절차적 결함이 있으면 취소라는 ‘두 번째 방어선’을 활용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국제 중재계에 확인되었다.
2. ‘원팀’ 전략과 국가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
정부 대리인단은 국제중재, 금융, 조세, 통상 등 다양한 분야를 묶은 ‘원팀(One-Team)’ 전략을 구사했다. 판정문 300여 쪽을 문장 단위로 분해하고 논리적 결함을 찾아낸 치밀한 작업은 향후 다른 ISDS 사건에서도 모범 사례로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각 부처와 국내·외 로펌이 13년 동안 자료와 정보를 일관되게 축적·공유한 점이 승소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ISDS를 단발성 사건이 아닌, 장기전이자 국가 인프라 구축 과제로 보고 대응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과제가 분명해진 셈이다.
3. 투자자의 전략적 시사점: ‘더 큰 보상’은 도박
투자자 입장에서도 시사점은 적지 않다. 론스타는 당초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 믿었던 판정에 불만을 품고 취소를 신청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존에 받기로 돼 있던 배상금까지 모두 잃는 역효과를 맞게 됐다.
이는 ISDS 절차가 단순히 ‘더 많은 보상’을 위한 일방 통행로가 아니라, 판정문 전체를 재검사하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향후 다국적 기업과 사모펀드들은 분쟁 전략을 짤 때, 소송 확대보다 협상·조정, 사전 리스크 관리 등 비분쟁적 해결 수단의 효용을 더 진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정치권의 ‘성과 가로채기’ 논란
정부의 완승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에서는 즉각 “누구의 공인가”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현 정부는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성과”라며 공을 강조했고, 야권 일각에서는 과거 정부가 ISDS 대응을 시작해 온 점을 부각하며 ‘성과 가로채기’라 비판했다.
이러한 정치권의 소모적인 공방은, 2022년 패소 판정 직후 “항소해도 이기기 어렵다”며 수용을 주장했던 세력과, 끝까지 취소심을 밀어붙인 법무부 라인을 대비시키는 형태로도 이어지고 있다.
2. 제도 개선: 규제 공백 해소와 투명성 확보
그러나 이번 분쟁이 남긴 더 중요한 과제는 정쟁이 아니라 제도 개선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우선, 론스타와 같은 외국계 자본이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매각하는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과 규제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제도 정비가 요구된다. 외환은행 매각 당시의 인수 구조, 세제·조세 회피 논란, ‘먹튀’ 비판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투자 자유와 금융안정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금융기관 인수·합병 승인 기준과 사후 관리 규정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3. ISDS 리스크 관리 및 공론화 필요성
또한 ISDS 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와 국내 공론화가 필요하다. 론스타 사건은 대중에게 ‘외국계 투기자본 vs 한국 정부’ 구도로만 소비된 측면이 컸다. 그러나 실제로는 투자협정(IIA) 구조, 국제중재 규칙, 금융감독권과 투자자 보호의 긴장 관계 등 복잡한 법·경제적 요소가 얽혀 있다.
향후 유사 분쟁을 예방하려면,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ISDS 리스크를 체크리스트처럼 점검하는 체계를 정착시키고, 공무원·정치권·전문가 집단이 이를 공유해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감정적 구호를 넘어, 국제투자규범이 국내 정책에 어떤 한계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1. 상시화된 ISDS 리스크와 대응 체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번 취소 판정으로 론스타 건은 법적으로 종결됐지만, 유사한 구조의 ISDS 사건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규제 다층화로 투자자-국가 간 충돌 가능성은 오히려 커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종 투자협정(IIA)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한국이 가입한 ISDS 조항은 수십 개에 이르며, 환경·기후·디지털 규제 강화 과정에서 해외 투자자의 제소 가능성이 상시 존재한다. 정부는 론스타 사건에서 축적한 판정문 분석·증거 관리·국제 로펌 협업 경험을 체계화해, 상설 ISDS 대응 조직과 매뉴얼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2. 국제 중재계에 남긴 파장
국제적으로도 이번 판정은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수 있다. ICSID가 취소심을 통해 대규모 배상 판정을 전면 뒤집은 사례는, “중재판정부도 절차와 논리의 검증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이는 향후 다른 국가들이 불리한 판정을 받았을 때, 취소심 활용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여지를 넓히는 동시에, 중재판정부가 판정문 작성 시 이유 제시와 절차 준수에 한층 더 신경 쓰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ISDS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투자자와 국가 모두에게 법적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역효과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만큼 투명한 절차와 균형 잡힌 투자협정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3. 새로운 케이스 스터디의 등장
국내 경제·정책 논의에서는 이번 사건이 “투자자-국가 분쟁에서 국가가 어떻게 재정과 정책 주권을 방어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준 대표 사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경제·법학 교육과 공무원 연수, 논술·시사 교육 현장에서는 론스타 분쟁을 통해 정부 책임, 국제법 구조, 금융시장 규제의 한계와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케이스 스터디가 한층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승소라는 결과에 안주하기보다, 사건을 계기로 투자유치 전략, 금융감독 체계, ISDS 대응 역량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느냐가 향후 10년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