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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0월, 잃어 가는 연습

10월-오세영

by 소걸음

24. 10월, 잃어 가는 연습/10월-오세영


10월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樂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마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천년의 잠』(한국대표 명시선 100), 오세영, 시인생각(2012.10.02)




시인은 잃어 가는 것이 곧 성숙해 가는 것이라 말한다. 봄의 낙화와 여름날의 상처가 슬프고 아팠지만, 10월에 이르러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때 우리는 자신을 오롯이 마주하는 텅 빈 충만함을 발견한다. 가을, 시월은 인생이 무르익어가는 때이다. 삶의 순리 속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상실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우리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성숙의 한 단계임을 깨닫게 한다.


낙과의 순간은 빛과 향이 어우러지는 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이별은 소멸이 아니라 완성이다. 낙과는 성숙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탄생을 예비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투신’이다.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 존재다. 그 연습 없이는 품위 있는 퇴장이 불가능하다. 「10월」은 그런 삶의 자세를 조용히 일깨워준다. 10월의 쓸쓸함 속에서, 삶을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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