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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서

도전의 문서

by 구름 위 기록자

'투고'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내게,

그 모든 과정들이 나를 처음의 마음으로 되돌려 놓았다.


처음에는 원고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출판사에 보낼 때는 반드시 기획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글이라는 재료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재료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독자에게 닿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맛으로 완성될지를 보여줘야 했다.


기획서는 마치 레시피이자 메뉴판이었다.

원고가 요리재료라면,

기획서는 그 요리를 상상하게 만드는 설명서였고,

출판사와 함께 완성해야 할 한 끼의 밥상이었다.


하지만 처음 기획서를 쓰던 나는

그 무게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책 제목 후보, 타깃 독자, 경쟁 도서, 차별성, 마케팅…”
출판사에서 원하는 항목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지만,

노트북 화면 위 커서는 자꾸만 깜빡였다.


문장을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결국 완성된 문서는 형식만 갖춘 소개문에 가까웠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투고를 대충 하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막상 쓰고 보니 너무 평범했다.


그 사실이 나를 죄책감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원고가 있으니 이 정도면 되겠지”라며 스스로를 설득했고,

그렇게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실감했다.
기획서는 단순한 부속 문서가 아니었다.
원고를 읽지 않아도 기획서만 보고

“아, 이 글은 이런 색깔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출판사를 설득하는 첫 관문이었다.


다른 작가님들의 기획서를 찾아보며 깨달았다.
그들은 원고와 기획서를 동시에,

하나의 책이자 프로젝트처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보낼 원고들에만 채우기를 몰두했고,

기획서는 뒤늦게 형식만 채웠다.

그 차이가 내 부족함이었다.


돌이켜보면, 완벽하지 않았던 건 기획서뿐만이 아니었다.

내 원고 또한, 그때의 나만큼이나 미완의 문장이었다.


이미 눌러버린 전송 버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배움도 남았다.

다음번에는 원고뿐 아니라 기획서에도 나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다.

짧은 한 장이라도 읽는 이가 나를 작가로서 믿을 수 있도록.

그 문서 하나만으로도 “이 사람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투고는 이미 지나갔다.

하지만 깨달음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때 깨달음은

내 마음속에 다시 피어오르는 열정과 함께 자라나

다음 도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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