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이제 전 세계가 듣는다.
10년 전만 해도, 기내에서 한국말로 뭐라고 중얼거려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서비스가 힘든 날이면, 나는 속으로 ‘아이고 힘들다…’
한숨 섞인 탄식을 조용히 흘리곤 했다.
하지만 그 말들은 늘 기내 엔진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말하자면, 안전한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상황이 바뀌었다.
인도행 비행.
400명이 넘는 승객들을 모시며 트레이를 걷어내던 중이었다.
식기도는 쌓이고, 사람들은 손짓하며 나를 부르고,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조금만 기다려주시지…”
그 순간, 옆에 있던 인도 승객 한 분이 나를 보며 말했다.
“많이 힘드시죠?”
…순간, 나는 멈췄다.
“제 말을… 알아들으셨어요?”
다행히, 그날의 내 중얼거림은 순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한국에서 10년 살았어요. 한국말 조금 해요.
수고 많으시네요.”
그 순간, 깨달았다.
더 이상 기내는 ‘비밀 한국어 구역’이 아니란 걸.
이제 한국어는 전 세계 곳곳에서 ‘들리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다른 비행에서는, 입국서류를 들고 있던
한 외국 승객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거… 한국어로 된 거 없어요?”
그의 말에 나는 조금 당황해 되물었다.
“한국어가 더 편하세요? 대부분은 한국분들께 드리는 서류라…”
그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 한국인이에요.귀화했어요.”
그 말에 순간 당황과
그의 한국 여권 앞에서 웃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아, 이렇게도 시대는 변했구나.
크루들 사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내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던 아이를 보며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 부모님은 어디 계신 거야… 저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 순간, 옆에 있던 크로아티아 출신 크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짜 똥강아지가 따로 없네요. 저러다가 혹 나봐야 정신 차리지~”
…응?
그의 한국어는, 그 어떤 한국 승무원보다도 자연스러웠다.
말투도, 억양도, 심지어 속담까지.
“한국어 어디서 배운 거예요?”
“연세 학당에서요. 고연이라고 안 하죠? 나 파랑색 좋아해요~”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뼛속까지 한국인이 되었구나.
이제는 정말, 마음 놓고 중얼거리면 안 된다.
누가 들을지, 어디서 반응할지 모른다.
기내에서 “수고하세요~” 하고 스쳐가는 외국 승객,
“찐이다, 이건”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동료 크루.
세상은 바뀌었고, 하늘 위 언어도 함께 변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혼잣말도… 살짝만 조심해야겠다.
하지만 그런 변화, 싫지 않다.
이제 한국어는 정말로 전 세계 하늘을 떠다닌다.
나의 자랑스러운 한국어도 나와 함께 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