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순서를 말하지 않지만, 계절은 잊지 않고 꽃을 피운다
다시 돌아온 배롱나무의 꽃.
계절은 어김없이, 기어이 오고야 만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때가 되면 피고, 또 진다.
자연은 참 묵묵하다.
순서도 정해주지 않았는데
한 꽃이 지면 기다렸다는 듯
다른 꽃이 조용히 피어난다.
그 안에 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질서와 순응, 그리고 순환의 철학이 있다.
다시금 붉은 나무가 되어가는 배롱나무.
백일 동안 피고 지는 꽃이라 하여
‘백일홍’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피고 지며 무언가를 전하는 듯하다.
그 꽃말이 참 닮았다.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고,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
그래서일까.
이 꽃을 볼 때마다
떠나간 이들이 떠오른다.
올해의 배롱나무는,
조금 더 붉고, 조금 더 아프다.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그리움이
다시 피어난 꽃 속에서 말을 건다.
꽃은 아무 말 없이 피고 지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에 큰 말을 남긴다.
그것이 자연이 가진 위대한 힘이자
아름다움의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