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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멜론과 장미, 그 짧은 만남

짧았지만 오래 기억되는 선택의 순간

by 정써니

" 장미를 골랐기에, 그는 향기만 남기고 사라졌다.

만약 멜론을 택했다면... ???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가끔은 아무렇지 않던 순간에 오래된 장면이 불쑥 떠오른다.

오늘도 그렇다. 창가에 앉아 있다가,

괜히 마음이 끌려 꺼내보는 기억 하나.


20대 중후반, 그 당시 역삼동에 직장이 있던 시절.

사무실 옆 계몽빌딩 1층 은행을 종종 이용했는데, 바로 거기서 시작된

그 시절의 작은 에피소드다.


퇴근길,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전광판을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혹시...역삼동 **은행에 오신 적 있으시죠?”

“네, 그런데요?”

“저, 거기 근무하는 최** 대리라고 합니다.

가끔 뵀어요.

오늘은 사무실에서부터 따라왔는데...

차 한 잔 괜찮을까요?”


순간 당황했다. 뻔한 작업 멘트 같기도 했지만, 인상이 순하고 서툴러 보여서 어쩐지 거절하지 못했다. 그때는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 시절이라, 번호 교환도 아닌 ‘내일 몇 시 어디서’라고 구두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내 뒷모습만 보고 따라왔을 걸 생각하니,

뒤늦게 옷매무새를 고치던 내 모습이 웃기게 떠오른다.


다음 날, 약속 장소.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나이, 집안 얘기, 취미...

‘이 사람이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정도로만 기억될 만큼 밋밋했다.

그냥 무난한 첫 만남.


시간이 흘러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그는 가방을 열더니 멜론 한 통과 장미 한 송이를 꺼냈다.

“이 중에 어떤 걸 가지시겠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웃음이 났다.

솔직히 멜론이 더 탐났지만, 첫 만남에 그걸 들고 집까지 가는 내 모습이 상상되자 우스웠다. 무겁기도 했고. 결국 나는 장미를 택했다.


그는 장미를 내밀며 정중하게 인사한 뒤, 어제처럼 시크하게 혼자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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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만약 내가 그때 멜론을 골랐다면 어땠을까?


혹시 멜론은 그의 진심이었고,

장미는 그저 형식적인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멜론은 오래 두고 나눠 먹자는 신호였고, 장미는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사의 상징이었을까?


나는 결국 장미를 골랐다.

그래서 그 만남도 장미처럼 짧고, 향기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건지도 모른다.

지금도 마트에서 멜론을 볼 때면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짧은 만남,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내게 멜론과 장미는 여전히 미스터리한 두 개의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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