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의 변주 속에서 배우는 비움의 철학
가을은 키 작은 봄이다.
나뭇잎이 물들어 다시 꽃피는, 또 한 번의 계절이다.
봄엔 새싹을 틔우고
여름엔 무성한 잎으로 자라
가을엔 화려하게 피었다가
겨울엔 모든 걸 내려놓는다.
나무의 사계는 말없이 같은 세월을 건너며
늘 같은 루틴 속에 머문다.
그 안에서의 변화는 자연스러움이고,
반복은 곧 안정이다.
하지만 나의 1년은 그렇지 않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같은 방법으로는 살지 못한다.
늘 어딘가 어긋난 채,
다름의 오류 속에서 길을 찾는다.
헤어짐은 이유가 있어서이기도,
이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아닌데
끝내 내주는 마음이 남는다.
헛헛한 이 마음은
왜 늘 가을에 찾아와 나를 흔드는 걸까.
아마도 이 계절은
내게 또 한 번 마음을 비우라 하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가을의 색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을 준비하는 쉼의 색인지도 모른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내려놓아야 다시 들 수 있다.
그렇게 계절은,
나에게 ‘다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