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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덧없고 영원한

루이즈 부르주아, 내면을 짓다

by 정써니

불안은 그녀의 조각이 되었고,

고독은 그녀의 예술이 되었다.


호암미술관을 찾았다.

가을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던 오후,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들이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전시장 정원에는 그녀의 대표작,

거대한 거미 조각 *〈마망(Maman)〉*이 있었다.

압도적인 크기임에도

섬세하게 뻗은 다리들은 어쩐지 모성의 품 같았다.

그녀에게 ‘거미’는 불안의 상징이 아니라

섬세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은유였다.

끈질기게 실을 잇고, 자식들을 보호하며,

끝내 자신을 소모시키는 존재.

그녀는 그 거미 안에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고 자신을 담았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191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가족의 태피스트리 복원 작업을 도우며 자랐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은

평생 그녀의 예술의 중심이 된다.

가정 내의 갈등, 어머니의 병,

아버지의 외도와 상처.

그녀는 그것들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조각과 드로잉, 판화, 설치미술로 꺼내어

불안과 분노, 외로움을 예술로 바꾸어냈다.


그녀의 작품에는 늘

치유와 회복, 정체성의 탐색이 흐른다.

표면적으로는 차갑고 낯설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가장 솔직한 감정이 숨 쉬고 있다.

삶의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스스로를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루이즈 부르주아의 예술이었다.


전시장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그녀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남긴 수많은 조각들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었다.

누구에게나 내면의 거미 한 마리쯤은 있지 않을까.

그녀의 작품 앞에 서서

나 역시 내 안의 불안과 마주했다.


덧없고도 영원한 감정의 파편들,

그것을 예술로 바꾼 한 사람의 생을 떠올리며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마망

거대한 다리 아래

나는 작아졌다


검은 쇳살로 엮인

그녀의 품은

낯설고 따뜻했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보호는

언제나 가장 외로운 손끝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실을 잇듯 상처를 꿰매고

불안을 품어

둥지를 만들었다


그녀의 그림자는

공포가 아니라

사랑의 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그 아래서

잠시,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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