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 사이에 걸어둔 마음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걷다 보면
문장 끝에 걸린 낫표 『 』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마저 닫히지 않은 문장처럼,
아직 끝내지 못한 마음들이 공기 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
단풍은 거의 떨어졌지만
길 위에는 여전히 가을의 기억이 남아 있고,
밤공기는 이미 겨울을 말하고 있다.
계절은 바뀌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시간.
딱 그 사이.
가을도 겨울도 아닌,
*낫표 하나의 계절.*
문장에 낫표를 걸어둘 때가 있다.
멈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조금 더 붙잡아두고 싶어서.
잊기 싫어서가 아니라
잊기 전에 잠깐 더 머물러보고 싶어서.
그때의 감정을 어느 계절의 것으로 정리해버리기엔
조금 아깝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올해도 그런 밤들이 있었다.
코트를 꺼냈지만 가을 노래를 끊지 못했던 날들.
집 앞 단풍이 거의 다 졌는데
괜히 마지막 한 장을 기다리며 멈춰섰던 오후.
한 계절이 완전히 떠나기 전,
마치 “조금만 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계절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도, 순간도, 감정도 그렇다.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더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
완전히 이별하기 전
마지막 온도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오래 부끄러워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떠나는 것을 천천히 보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이
늘 건강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낫표 하나의 계절은
미련의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사라짐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내가 지났던 계절을 온전히 품어주는 시간.
그래서 오늘,
나는 또 계절의 끝에 서서
문장 하나를 완전히 닫지 않았다.
조금은 흔들리고
조금은 머뭇거리면서
잠시의 따뜻함을 더 느껴보기 위해.
가을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계절 사이에 작은 낫표 하나를 걸어둔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살아 있다고 부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