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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낫표 하나의 계절

가을과 겨울 사이에 걸어둔 마음

by 정써니

계절을 붙잡은 게 아니라,

그 계절의

나를 붙잡아 준 시간이었다.

가을과 겨울 사이를 걷다 보면

문장 끝에 걸린 낫표 『 』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마저 닫히지 않은 문장처럼,

아직 끝내지 못한 마음들이 공기 속에 오래 머물러 있다.


단풍은 거의 떨어졌지만

길 위에는 여전히 가을의 기억이 남아 있고,

밤공기는 이미 겨울을 말하고 있다.

계절은 바뀌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시간.

딱 그 사이.

가을도 겨울도 아닌,

*낫표 하나의 계절.*


『 ᆢ 』


문장에 낫표를 걸어둘 때가 있다.

멈추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조금 더 붙잡아두고 싶어서.

잊기 싫어서가 아니라

잊기 전에 잠깐 더 머물러보고 싶어서.

그때의 감정을 어느 계절의 것으로 정리해버리기엔

조금 아깝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올해도 그런 밤들이 있었다.

코트를 꺼냈지만 가을 노래를 끊지 못했던 날들.

집 앞 단풍이 거의 다 졌는데

괜히 마지막 한 장을 기다리며 멈춰섰던 오후.

한 계절이 완전히 떠나기 전,

마치 “조금만 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계절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도, 순간도, 감정도 그렇다.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더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

완전히 이별하기 전

마지막 온도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오래 부끄러워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떠나는 것을 천천히 보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이

늘 건강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낫표 하나의 계절은

미련의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사라짐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내가 지났던 계절을 온전히 품어주는 시간.


그래서 오늘,

나는 또 계절의 끝에 서서

문장 하나를 완전히 닫지 않았다.

조금은 흔들리고

조금은 머뭇거리면서

잠시의 따뜻함을 더 느껴보기 위해.

가을이 완전히 떠나기 전에

계절 사이에 작은 낫표 하나를 걸어둔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살아 있다고 부르기로 한다.

『 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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