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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이 로컬을 창업한다는 것

환대와 경계 사이에서

by 이니프

“지역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외지 청년을 유입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최근 수년간,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청년 창업 유치를 핵심 전략으로 삼아 왔다.
이 중 많은 사업이 지역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획된다.
다양한 로컬 브랜드, 게스트하우스, 식음료 매장이 외지인의 기획과 실행으로 등장했고, 실제로 새로운 감각과 서비스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2년이 지나고 나면, 그들 중 다수는 지역에 남아있지 않다.

물리적 유입은 늘었지만, 관계와 정착이 남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외지인이 지역에 가져온 변화들


외지인은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지역 내부에서 오래 묻혀 있던 자원을 새롭게 해석하고 구성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익숙함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꺼내 새로운 언어로 포장하고, 브랜드와 콘텐츠로 재구성한다.


실제로 강원도, 전남, 제주 등 다양한 지역에서 외지 청년이 주도한 프로젝트들이 관광 콘텐츠와 특산물 리디자인 시장을 자극한 바 있다. 이러한 창업은 때때로 지역 내부 청년의 감각과 실행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외국 사례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나타난다.
예컨대 일본 홋카이도의 '지역활성화협력대'는 외지인의 실행력을 기반으로 폐업한 공장을 문화 복합공간으로 바꾸거나, 지역 축제를 브랜딩해 매출을 높인 사례를 남겼다.


미국 북서부의 농촌지역에서는 기술 기반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지역 내 창업 실험을 유도하면서, 학교와 커뮤니티 간의 새로운 접점을 형성했다. 이러한 실험은 외지인의 등장이 지역 내에서 정체되어 있던 기획력의 회로를 흔드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쉽게 간과되는 것들


외지인의 창업은 때때로 지역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단기 체류 기반의 창업 지원사업은 관계 형성 없는 소비와 자원 활용이라는 인식을 남기기 쉽다.

지역에 오래 거주하며, 지역 자원을 직접 다루어온 이들은 외지인의 급속한 진입을 보며 양가적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 구조가 누구의 관점에서 설계되고 있느냐에 대한 정당한 물음이다.


실제로 지역 청년들 사이에서는 외지인 중심의 지원사업이 반복될수록 “기획력은 밖에서 오고, 지역은 수동적으로 제공된다”는 구조가 고착되는 데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일본 협력대 사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관찰되었다.
협력대에 참여한 외지 청년 중 상당수가 정해진 활동 기간이 끝나자 지역을 떠났으며,
관계의 지속성보다는 과업의 완료가 중심이 되었다는 비판도 존재했다.


외지인을 위한 창업, 아니라 외지인이 함께할 수 있는 창업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외지인 유치를 위한 창업이 아니라, 외지인이 머무르고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의 창업은 어떤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① 거주와 활동이 통합된 설계

단기 임대 공간이나 공유주택이 아니라, 실제 생활 기반을 가질 수 있는 정주 설계가 동반되어야 한다.
정책 지원이 단기 숙소 제공에 머문다면 창업은 일시적 체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② 관계를 중심으로 한 실행

사업계획서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느냐다.
지역 주민, 상인, 청년 단체, 학교 등과 협업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질 때 외지인은 단순한 운영자가 아니라 지역의 협업자가 된다.

③ 지역 내부 청년과의 교차 지점 설계

외지 청년과 지역 청년이 같은 무대에서 동등하게 실험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한쪽은 기획, 다른 한쪽은 실행이라는 이분법은 창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없다.


외지인의 창업은 지역에 자극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자극이 관계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역에는 기획은 남고 사람은 떠나는 일이 반복된다.

외지인을 위한 정책은 ‘들어오는 것’만 설계해선 안 된다.

머무를 수 있는 이유, 함께할 수 있는 관계, 그리고 지역 내부와 교차할 수 있는 무대가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로컬 창업은 결국, 그 지역에 남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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