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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영혼은 오래된 가게에서 살아남는다

오래된 상점(노포)의 가치와 지역 지속성

by 이니프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문득 멈추게 되는 오래된 가게가 있다.
수십 년을 버텨온 간판의 낡은 글자, 세월의 얼룩이 새겨진 벽지,
단골과 지나가는 손님을 이어온 공간의 무게감이 그곳에는 있다.
나는 이 오래된 가게들을 단순한 유물이나 레트로 감각의 소비처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한 지역의 정체성, 관계망, 지속 가능성을 잇는 중요 축이다.

이 글에서는 오래된 지역 가게, 즉 노포(老鋪)가 지역 창업과 도시 회복력에 던지는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심당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거점과 비교하면서, 왜 오래된 가게가 도시의 영혼이 될 수 있는지 논의해본다.




노포의 특징과 의미

1. 시간의 깊이와 신뢰 자본

오래된 가게는 업력(업력이 긴 기업)의 증표이자, 세대 간 신뢰를 쌓아온 공간이다.
한국의 연구들에서는 장수기업의 지역경제 기여성을 분석한 바 있다.
예컨대 2022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연구 논문 [기업승계와 장수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에 따르면 장수기업·업력 높은 사업체는 고용 안정성, 매출 기여도로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있다.

또한 노포는 단골 관계망이 구성원과 고객 사이에 이어지며,
그 관계망이 지역 내 커뮤니티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2. 문화적 아이콘이자 도시 기억 저장소

오래된 가게는 단지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기억을 담는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는 한 지역 사람들의 삶과 변화, 소비 패턴의 변곡점이 쌓여 있다.

강원지역 노포 사례를 보면, 막국수·닭갈비 가게 등이 단순 음식점을 넘어서 지역 관광 및 문화적 자원으로 기능한다는 분석이 있다. 관광객이 “원조 맛집”을 찾아가는 패턴은, 노포가 지역의 상징으로 소비되는 단적인 예다.


3. 지속 가능성의 시험대

오래된 가게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갖췄다는 의미다.

어떤 점포는 세대 승계, 리모델링, 브랜드 재해석을 통해 변화에 적응해왔고,
다른 점포는 외부자본이나 프랜차이즈 구조에 흡수되면서 정체성을 잃기도 한다.

한편, 통계청·한국통계연구원 자료 중 백년가게 정책 관련 자료는
노포의 지역 분포와 지속 요인을 다룬 연구들이 많다. 예컨대, 한 연구에서
백년가게 분포를 설명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역 경제력, 인구 구조, 도소매업 수 등이 유의미하다는 분석이 있다.




성심당: 지역 노포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사례

성심당은 한국의 대표적인 사례다.
1956년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으로 시작한 성심당은,
지금은 대전의 랜드마크이자 도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몇 가지 특징을 통해 노포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을 정리해보면:


- 지역 몰입과 브랜드 정체성 유지

성심당은 대전 지역에만 매장을 두고, “당일 생산·당일 판매” 원칙을 고수한다.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한다.


- 소비 경험과 문화 연결
성심당 거리, 케이크 부띠끄, 문화원 등과 같은 공간 확장을 통해 단순한 빵집을 넘어 문화 소비 공간으로 확장했다.


- 매출·수익의 급성장
비교적 작은 사업체임에도 불구하고, 2023년 기준 매출 1,243억 원 을 달성하며 대형 프랜차이즈와 견줄만한 실적을 보였다. 2024년에는 매출이 1,937억 원 수준까지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오래됨’ 이상의 요소, 즉 문화적 자원화, 브랜드 전략, 지역과의 관계 설계가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오래된 가게를 지역 전략 자산으로 바꾸는 길

1. 가업 승계와 브랜드 재해석

노포가 지속되려면 다음 세대로의 승계 방식이 중요하다.
단순히 물려받는 수준을 넘어서, 브랜드 정체성은 유지하되 시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메뉴 디자인 리뉴얼, 디지털 마케팅 접목 등이 필요하다.


2. 노포 중심의 로컬 콘텐츠화

지역관광 콘텐츠와 연결하여 노포를 방문 목적지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음식관광 연구에서는 지역 특색 음식이 관광객의 방문 의도와 만족도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있다.

예컨대, “성심당 투어 + 대전 먹거리 코스” 같은 콘텐츠화가 가능한 접근이다.


3. 정책 지원과 브랜드 인프라 결합

지방 정부나 지자체는 오래된 가게에 대한 보존·브랜드 지원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가령, 간판 개선 보조금, 관광 연계 콘텐츠 제작, 매체 홍보 지원 등이 있다.
또한 “백년가게 인증 제도”나 “문화재적 가치 인정” 같은 제도적 인센티브가 도움될 수 있다.




결론 : 오래된 가게가 만드는 도시의 지속성

오래된 가게는 단순한 사업체가 아니다. 도시의 기억, 정체성, 관계 구조를 지탱하는 자산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지역 전략 자산으로의 재생이다.
성심당처럼 노포가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은 아래와 같다.

지역 몰입과 정체성 유지

문화 소비 공간으로 확장

브랜드 전략과 수익 구조의 조화


지방의 창업 전문가로서, 우리 지역에도 그런 오래된 가게가 있다면
그 가게를 중심으로 한 지역 콘텐츠 프로젝트, 브랜드 리브랜딩, 관광 루트 연계 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영혼은 오래된 가게에서 살아남는다”
그 말처럼, 오래된 가게는 낡은 공간이 아니라
미래를 연결하는 중심축이 될 잠재력을 가진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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