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네 회사야. 난 돕는 거라고, 대체 왜 열심히 안 해?"
아내는 또 맞는 말만 한다.
"여보가 나보다 열심히 해주니까 그렇지. 나보다 여보가 회사랑 더 친해."
장난 섞어 대꾸해도, 넌 왜 맞을 말만 하냐며 구박이다. 어릴 때도 입만 살았단 얘기, 많이 들었는데. 사람이 쉽게 변하진 않나 보다.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시작한 사업.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하필 나도 운이 좋았다. 일이 잘되니 힘든지도 모르겠더라. 하루에 수십 명을 만나고 통화하고, 입이 마르고 목이 쉬어도 몸은 날개 달린 듯 가벼웠다. 취미가 영화 감상에서 영화관 수면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실 영화든 소설이든, 이번 장면에 나올 내용은 뻔하다. 내 인생도 뻔했다. 마치 불행한 가정처럼, 불행한 사업체도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내 경우는 유독 참담했다. 국가 정책에 반대하고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유로 내 날개는 녹아버렸다.
우리 아이가 커서 들으면 믿지 않겠지만,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로 문제가 되던 시기가 있었다. 정책에 불만이 있으면 올리라는 공론장이 있었는데, 사실상 동양화 속 여백처럼 깨끗하게 둬야 하는 줄은 몰랐다. 그걸 주위 사람 끌어모아 항의글을 올렸으니, 먹물이라도 들이부은 모양 아니었을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비정기 감사가 나와 사무실을 깨끗이 털어갔다. 며칠 뒤엔 생각지도 못한 청구서가 도착했다. 적힌 숫자도 감당하기 벅찼지만, 나를 무너뜨린 건 조용한 한마디였다. 다시는 그런 글 올리지 말라는 말. 길에서 부딪힌 아이에게 "앞으론 조심해." 하듯, 조용하고 무심한 목소리에 나는 완전히 녹아내렸다.
멍게는 스스로의 뇌를 먹고 바위에 뿌리를 내린다. 나의 바위는 침대였다. 처음엔 몸이 무거웠고, 그다음엔 마음이 말라갔다. 결국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슬픔도, 분노도 사치였다. 하루 종일 TV를 봐도 기억나는 장면은 하나 없었다.
직업은 방관, 취미는 침묵. 아내의 권유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 없었다. 그때 내가 가장 부러워한 존재는, 숨만 쉬고 살아가는 멍게였다.
의도치 않게 일찍 깬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 갈 준비를 하는 소리가 방 안으로 들려왔다.
"엄마, 나도 아빠랑 가고 싶어. 친구들 다 엄마 아빠 같이 오는데 왜 나만 엄마랑만 가?"
말이 늦어 걱정이라더니, 제법 늘었다.
"아빠가 나쁜 저주에 걸려서 그래. 우리 공주님이 매일 뽀뽀해 주고 마법 풀리게 해 주자."
유치한 거짓말. 해맑게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말에,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조차 몸을 숨기듯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린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이를 마중하고 돌아온 아내의 소리가 문 밖에서 들린다. 요리를 하는지 ‘치익 치익’ 증기 소리가 났고, 그 뒤로 낮고 규칙적인 마찰음이 이어졌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소리다. 귀를 기울이니 알겠다. 구두를 닦는 소리다. 아까의 소리는 셔츠를 다리는 소리였구나. 그런데 아내는 구두를 신지 않는다. 셔츠도 다려 입지 않는다.
기억 속, 애써 닫아둔 방에 불이 탁 켜진 느낌이었다. 그 안엔 그간 들려왔던 구두 닦는 소리와 다림질 소리가 가득했다. 매일 아침 울려 퍼졌던 이 소리. 그게 이제야 들린다. 멈춰 있던 나 대신 누군가 계속 일어났다는 증거. 그제야 조용했던 아침들이 비명 같았다. 아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게 다행이다. 어느새 뿌리가 부서지듯 울고 있었다. 놀라서 달려온 아내의 포옹이 이불 너머로 느껴진다.
영화 속 냉동인간은 언제나 멀쩡히 일어난다. 하지만 내가 다시 움직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딸의 손을 잡고 등원하던 어느 날 아침, 햇살의 따뜻함이 무심히 스며들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공원에 앉아 그동안 놓친 세상을 보았다. 정오의 눈부심, 아이들 뛰노는 소리, 노을의 아련함. 잊었던 풍경들이 다시 삶 속으로 들어왔다.
병원도 물론 다녔다. 심한 수준의 우울증. 너무 무기력해서 우울감조차 스스로 못 느꼈을 거라고 하더라. 약 처방을 받고, 운동도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깊은 바다 밑에서 진정으로 끌어올린 건 결국 아내와 딸의 말, 그리고 손길이었다.
아내는 내가 놓쳐버린 세상을 대신 붙잡고 있었다. 육아도, 사업장도 그랬다. 사실 사업장이 주인을 고를 수 있다면 나는 거들떠도 안 볼 정도다.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까. 그 모든 시간을 아내는 하루하루 감당해 냈다. 멈춘 내 시간을 끌어안고, 두 배로 살아온 사람. 변하지 않고, 끝내 내 곁을 지켜준 것이다.
"그렇게 누워 있더니, 이제는 알아서 일어날 때도 된 것 같은데?"
아침을 깨우는 목소리는 늘 다정하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오래 못 산다잖아."
장난 섞인 내 대답에 어김없이 구박이 돌아온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딸을 등원시키기로 했다. 요즘은 양손을 잡고 점프해 주는 걸 유난히 좋아해서다.
"하나, 둘, 영차!"
아이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원에 도착하려면 열 번은 더 해줘야 할지도 모른다.
힘들진 않을까 싶어, 슬쩍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아침 햇살에 비친 얼굴엔 연애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