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길에서

by 륜독


길을 걷다가 보면 앞에서 오는 사람과 서로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몰라 와리가리 할 때가 있다. 망설이다가 상대가 오른쪽으로 가겠지 싶어 왼쪽으로 앞서나갔는데, 상대도 왼쪽으로 온다. 생전 처음 보는 이와 길바닥에서 너무 가깝게 다가갔다가 화들짝 놀라며 멀어진다. 이런 과정이 한 번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러 번 서로 같은 방향으로 헛발질하게 되면 머쓱함은 더 커진다. 그리고, 내가 혹시 이 바쁜 세상에 자신의 앞길을 막아 상대가 노여워하진 않을지 초조해진다. 다급하게 서로 반대 방향으로 발을 내디디면, 드디어 각자 갈 길을 갈 수 있다.


서울과 많은 사람들이 낯설었던 20대 초반에는 이런 일들이 꽤 자주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상대방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까지 해서 피해야 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고된 서울살이가 소소하게 더 고단해지곤 했다.


지하철에서 쏟아져내리는 사람들이 무서워 정신이 아득해질 때도 많았다. 그속에서 나는 주춤주춤, 피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요즘은 그런 일이 많지 않다. 왜일까? 길에서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고 나름의 결론을 냈다.


이제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앞에 오는 저 사람이 어디로 향할지보다 내가 어디로 갈지 생각하고 발을 움직인다. 이 사소한 행위에서 깨달은 게 있다.


내가 확실히 내 갈 길을 가면 앞사람도 망설이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는 것. 여기로 갈까 저기로 갈까 고민하다 보면 서로 오해하게 되고 동선이 꼬이기 쉽다.


지하철에서 사람이 쏟아져 내려도 내가 타야 하는 저 지하철 안을 보면서 발 디딜 곳을 찾아 쏙쏙 들어가면 된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남들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하게 배려한답시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와리가리 하는 사이 상대는 내 뜻을 오해하거나 덩달아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바람에 어색해지고 만다. 그러면 될 일도 안 되고,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날 대할지 너무 고민할 필요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오늘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지 명확히 하는 데 집중하자.


타인을 피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아가는 것에 집중할 것. 지레 방어적으로 굴지 않을 것. 오래 고민하지 말고 먼저 내 주관을 명확히 하고 표현할 것.


이런 다짐으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 속 노량진역 5번 승강장을 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