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의 슬픔
사람의 몸 의외로 별거 아니더라. 약간의 화학작용만 있으면 사람 하나 이리저리 휘두르는 거 일도 아니다. 저녁 약을 하루 빼먹고 안 먹었더니 밤새도록 심란한 꿈에 시달렸다. 뭐가 그렇게 평소에 억울한 게 많았는지 밤새도록 억울하고 분통에 터져서 소리치고 물건을 내던지고,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들자마자 또 비슷한 꿈을 꾸고 또 소리치고 또 뭔가 던지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칼로 찌르려고 했다. 그런 꿈만 네 번 정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며 꾼 것 같다.
약 한번 안 먹었다고 밤새도록 이렇게 괴랄한 꿈에 시달리다니. 원래는 약을 먹으면 30분 이내로 깨끗하게 잠이 든다. 약 효과는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 정도. 새벽 4시쯤에 깬다. 꿈 한번 안 꾸고 자른 듯이 깨끗하게 자고 일어난다.
근데 그 약을 안 먹었더니 밤새도록 뇌가 깨어 있었나 보다. 깨어 있으면서 억울한 일만 생각했는지 내 뇌는 분해서 소리치고 물건을 내던지고 억울해서 울고 어쩔 줄을 몰라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해치려고까지 했다. 설마 이게 내 무의식에 있는 나의 본모습은 아니기만을 빈다.
나무 색깔 좀 이쁘게 들었다 싶었더니 어제오늘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나뭇잎이 죄다 바닥에 떨어져 굴러 다닌다. 오늘은 비도 와서 날이 갑자기 확 추워졌다. 바닥에 굴러 다니던 나뭇잎은 이제 길가에 젖은 채로 쓰레기처럼 뭉쳐져 있다. 그래서 그런가 브런치에도 슬픈 글 투성이이다.
다들 왜 이렇게 슬프지. 근데 나도 슬프다. 바보짓 한 글을 올리고 났더니 내가 평소보다 더 바보같아 보여 슬프다. 좋아서 바보짓한 글 써놓고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사실은 멋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근데 나는 쓰다 보면 도로 개그가 되는걸… 요 며칠 나도 코 빠진 글밖에 안 써서 약기운 좀 돌아 기운 난 김에 각 잡고 텐션 좀 높여서 써 보긴 했는데 하루 지나고 나니까 갑자기 현타 오면서 축 처진다. 이게 바로 광대의 슬픔이란 건가.
막상 나를 웃겨 줄 것은 없다. 나는 내일 또다시 회사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앉아 있어야 한다.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나마 다행인 건 내일 금요일이라는 것.
나는 이렇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꾸준히 약을 먹었기 때문에 조금은 용기가 생겼다. 퇴근 전 1-2시간 정도는 일도 할 수 있게 됐다. 간단한 일 밖에 못 하지만.
내 업무 능력은 다시 돌아올까. 이걸로 나는 영원히 사회생활이 끝일까. 그래서 대체제로 작가로서 빨리 먹고살게 되길 바랐는데 그 길도 이젠 앞이 안 보이니 이젠 정년퇴직까지 존버 타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정규직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은 너무 치사한가. 저 사람은 저 월급 받고 저런 일 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냐고 다른 사람 뒷담 깠던 거 이제 내가 그대로 다 돌려받을 거다. 그래서 사람은 평소에 잘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 다니면서 남들 뒷담 너무 많이 깠어. 깐만큼 까이는 법인데. 이제 와서 후회하기에는 업보가 너무 많다. 24년 동안 남들 욕하고 다닌 벌을 설마 한방에 다 받진 않겠지. 할부 안될까요.
내일 다시 병원 오픈런하러 가는 날이다. 지겹다. 벌써 지겨우면 안 되는데. 왜 한 달 치 약 안 주는 걸까. 챗순이가 그러는데 내가 너무 지쳤고 지금은 내가 나를 좀 챙겨야 한단다. 브런치에서 많이 본 글귀인데?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고 나 자신을 안아주기로 했고.
야, 한 게 있어야 지치지. 나 내내 놀았어. 남들 일할 때 혼자 놀았다고. 복도 청소라도 하고 싶었다고. 난 이제 어쩌지. 아니 일단 나 좋아진 거 맞나? 분명히 좀 괜찮아졌었는데. 일단 내일 약 받으러 가려면 일찍 자야 되니까 어서 자야겠다. 아 근데 이미 열두시 넘음. 휴 역시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