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한때는 아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 "선생님은 어떤 별이 좋아요?" 과학 선생님이라고 별 질문을 다 한다 싶어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아이들의 그 말간 눈을 보면 장난스럽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들에게 분광형이니 절대등급이니 하는 어른의 언어로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음… 나는 명왕성이 좋아." 그러면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에이, 선생님. 걔는 별도 아니고,,, 우리 태양계 행성 아니잖아요? 퇴출당했잖아요."
맞다. 아이들의 말이 정확하다. 명왕성(Pluto)은 한때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2006년, 국제천문연맹이 행성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명왕성은 그 기준에서 밀려났다. 너무 작아서, 궤도가 너무 기울어져서, 주변의 다른 천체들을 지배하지 못해서. 냉정한 과학의 잣대로 보면 명왕성은 자격을 박탈당한 별이다. 하지만 나는 그 별이 우주에서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명왕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꽁꽁 얼어붙은 몸이지만 묵묵히 자전하고 있고, 아주 긴 타원을 그리며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 중이다. 누가 이름 불러주지 않아도, 세상이 '넌 진짜 별이야'라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말이다.
나는 가끔, 아니 꽤 자주 나 자신이 명왕성처럼 느껴지곤 했다. 과학 선생님으로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나는 사실 명왕성이 아니라 '태양'이 되고 싶었다. 우리 반이라는 작은 우주의 중심이 되어, 뜨거운 열기로 아이들을 이끌고 싶었다. 내 수업은 특별해야 했고, 아이들의 시선은 언제나 나를 향해 있어야 했으며, 내가 하는 말은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빛나기를 바랐다. 그래서 밤을 새워 화려한(?) 학습지와 PPT를 만들었다. 실험기구를 칼같이 정리하고, 문제 하나와 단어 하나에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은 내가 교실 한복판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들이 웃고 있지만 그 웃음이 나 때문이 아닌 것 같았고, 아이들이 침묵하는 날이면 나는 그들의 궤도 밖으로 밀려나 한참 먼 곳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기준에서 나는 조금 빗겨 나간 존재, 궤도가 기울어진 명왕성 같았다. 그 씁쓸함이 바로 명왕성의 기분 아니었을까? 그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아이가 소행성 떼처럼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나란히 날아가며.
하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동료와 회의하고,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다시 교탁이라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중심이 아니어도, 나는 계속 돌았다. 그것도 아주 충실하게. 이제 나는 명왕성의 그 기울어진 궤도가 좋다. 중심에서 떨어진 자리,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에너지 준위를 지닌 그 궤도 말이다.
화학을 전공한 나에게 오비탈의 세계는 익숙하다. 전자는 중심(핵)에서 멀어질수록 더 높은 에너지를 가진다. 나도 그렇다. 나의 교직은 시간을 지나며 중심에서 점점 더 멀어졌지만, 그만큼 더 깊어졌다. 단순히 교과 지식을 전달하던 자리에서, 서서히 아이들의 생활과 감정, 학부모와의 소통, 동료와의 협업까지 품어야 하는 넓은 궤도로 나아갔다. 그렇게 나는 수업을 넘어 업무, 상담, 교육 행정 등 더 많은 것을 껴안게 되었다.
이 에세이는 그 궤도의 기록이다. 여기엔 거창한 성공담도, 눈물 쏙 빼는 특별한 드라마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흔하지 않음'이 꼭 특별해야만 가치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어쩌다 잊고 있었던 어떤 마음과 조용히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명왕성처럼 돌고 있다. 조금 느리게, 그러나 정직하게. 교실이라는 이 작은 우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