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 마음이 퍽 당혹스럽고 짜증스럽다. 화가 난다. 어떻게 해도 오락가락한 것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누가 그랬더라 글을 쓸 때 최선을 다해 솔직한 마음을 담아 쓴다고. 내가 그랬나? 그랬던 것도 같다. 개뻥이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나도 기만한다. 나는 가식덩어리다. 허울뿐인 멍청이다. 내가 써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쁘고 다정한 문장들을 보면서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참아낸다. 너 이런 애 아니잖아. 이렇게 사랑스럽고 다정한 사람 아니잖아.
언젠가 실제로 대면했던 작가님께서 글을 쓸 때 얼마만큼 솔직하게 쓰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진실로 솔직하다고 말했다. 그분은 실제의 나를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해주셨다. 나는 본디 거짓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아마 잘 속인 것 같다. 내가 그 글을 얼마나 가식적인 마음으로 썼는지는 나밖에 모를걸.
누군가 내게 뭘 해도 될 사람 같았다고 했다. 사실 그런 말은 꽤 많이 들었다. 그래서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결국 내가 뭐가 됐지. 아무것도 안 됐는데. 아마 당신도 내 밑천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얘 별거 없네 싶을걸.
며칠 전, 어떤 댓글을 봤다. 나는 여전히 엄마가 밉다. 아마 죽을 때까지 밉겠지. 그런데 그 댓글은 내가 애써 외면하던 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약하고 멍청해서, 엄마를 원망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러니 나는 나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하다. 아, 정말로 끔찍한 나 자신.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겨울의 것이다. 내년 봄이면 해산할 친구를 위해 아이 덧신을 뜨다가, 문득 올겨울엔 내 것을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맘때쯤이면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지만, 정작 나를 위한 것은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이렇게 나한테 모질다.
중학교 2학년. 나와 짝꿍은 죽이 퍽 잘 맞았다. 우리는 가정 시간에 만든 목제 휴지 걸이와 교과서 뭉치를 책상 끝에 세워 방어벽처럼 쌓아두었다. 그리고 그 아래서 몰래 뜨개질하며 키득거렸다. 히터도 제대로 틀어주지 않던 인색한 학교. 우리는 두꺼운 패딩 속에 실타래를 숨기고 소심하게 바늘을 움직였다. 매서운 공기 속에서도 창가로 쏟아지던 햇빛은 우리의 손가락을 참 예쁘게도 반짝이며 비추었다.
그 애와는 참 사소한 오해로 멀어졌다. 잘 지내고 있을까. 걔도 글을 썼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애와 나는 꽤 많이 닮았었다.
요즘은 글쓰기가 참 힘겹다. 관계를 쓴다며, 그 관계를 다정히 여기고 사랑하겠다더니, 결국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하는 이 꼴이라. 이토록 가식적이고 참담한 마음으로 온정과 다정을 쓴다는 것이 역겹고 지긋지긋하다. 모처럼 어렵게 찾아낸 행복이거늘, 한 문장마다 가슴을 찔러내 목구멍이 꿀떡이는 것이라, 나는 언니를 붙잡고 엉망이 되어 울었다.
새로 글을 쓰고 있다. 얼마나, 언제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곳에 공개하진 않을 것이다. 그 글은 줏대 없는 내가 어떤 결심을 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부디 그 글을 다 쓸 즈음엔 다시 다정과 온정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그 문장을 쓰는 일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