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에는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새벽같이 출근하면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기 위해 비척비척 탕비실로 향해 노란 맥심 봉지를 뜯어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셨다. 나에게 있어 커피란 그게 전부였다. 입천장을 델만큼 뜨거운 온도에 호호 불어 마시는 커피는 잠을 잠시 쫓아낼 뿐, 그것에 어떤 맛이나 취향 따위는 존재할 수 없었다.
나는 늘 그렇게 삶이 퍽퍽해서,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무언가를 마시는 삶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컨대 주말 오전 열한 시쯤, 우연히 스타벅스를 지날 때면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 시간에 저기 앉은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지…?” 같은 생각이나 했던 것이니, 그들을 보며 참 할 일없고, 여유 넘치는 삶이라 생각했다. 조금 재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얼마쯤 비뚤어지고 못난 인간이었다.
어쩌다 여자친구들하고 만날 때면 늘 비슷한 패턴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근황을 나누고 수다를 떨었다. 사교성이 떨어지던 나는 밥을 먹으며 간단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면 솔직히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나는 직장인이었고 친구들은 전부 대학생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들이 폭탄 같은 과제와 씨를 뿌리는 교수님을 원망할 때 나는 적당히 알아듣는 척하며 맞장구쳐 주어야 했으며, 간혹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직장생활에 대해 묻는다면, 사실 아무것도 할 줄 몰라 매일같이 삽질이나 하는 바보 천치 주제에 그럴싸하게 사회의 구성원인 척이나 해야 했다. 그렇게 서너 시간 넘게 버티는 것은 꽤나 피로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도 카페를 꺼렸던 이유는 또 있었다. 카페에 영 익숙지 않았던 나는 내 음료 취향조차 몰랐다. 그게 부끄러웠다. 스무 살이 넘도록 그곳에 가면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몰라 늘 고민스러웠다. 아는 메뉴가 없어 그랬다. 솔직히 고백건대 그 흔한 아이스티나 레모네이드조차 거의 마셔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만의 ‘최애 음료’를 척척 고르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고작 음료 하나 고르지 못하는 내가 창피했다. 괜히 아무거나 아는 척 골랐다가 입에 맞지 않아 망신이라도 당할까 봐, 나는 늘 메뉴판 앞에서 심사숙고해야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무난하고 유난 떨지 않을 만한 메뉴로 고른 것이 ‘바닐라라떼’였다. 맛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엄청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나는 아주 가끔씩, 종종은 카페에 들러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십 년이 더 지난 지금, 나는 ‘얼죽아’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콜드브루만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정말 피로해 죽겠다면 어쩔 수 없이 아메리카노도 마시지만, 극 불호의 브랜드도 생겼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나는 늘 까다롭다. 심미안도, 미각도. 그래서 입맛에 맞는 콜드브루를 찾아다니는 일은 조금 피로한 일이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꽤 고무적인 일이다.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다. 나는 종종 이곳에 나와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자리가 있다. 물론 예약한 자리도, 내 명의도 아니지만, 통창 옆에 있어 하늘과 구름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오고, 다른 자리들과 살짝 경계가 나뉘어 있어 독립적이면서도 사람 구경하기 좋은 자리다. 그러니까 예전엔 이해할 수 없던, 여유롭고 할 일 없어 보이는 데다 조금 재수 없는 인간이 이제 바로 내가 되겠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동안 이곳에서 맛있는 커피를 찾지 못했다는 것인데, 오늘은 드디어 나의 최애 메뉴를 찾았다. 오트 콜드브루, 기본 시럽 대신 헤이즐넛 시럽으로 대체. 부드러운 목 넘김에 적당한 당도, 고소한 오트 밀크로 은은하게 채워주는 포만감이 속을 데워준다. 아, 광고 안 받았습니다.
실은 폭풍 같은 격랑과 해일을 지나는 요즘이다. 퍽 믿었던 인간관계는 환멸 나는 데다, 요즘은 내가 곳간에서 인심 나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무척이나 싫고 미워진다.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 겉으로는 축하하며 격려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렇게 음습한 내가 싫다. 내가 잘난 인간이었으면 진심을 다해 축하했을 텐데, 없는 곳간을 들여다보느라 쪽팔린다. 그러면 숨기기라도 잘해야 할 텐데, 거짓말도 못 해서 티가 나는 꼴이 부끄러워서 돌아버릴 것 같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숨고 싶다. 위로가 필요한 걸까. 잘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 예쁘게 말해주는 사람들은 많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쓰레기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하염없이 메뉴판을 들고 스무 살의 어느 날처럼 한참을 고민했다. 이렇게 가을과 겨울의 어느 사이, 계절이 부유할 때면 변덕처럼 손가락을 따뜻이 데워줄 음료가 당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서 골라낸 것이 또 콜드브루라, 사실 이런 대쪽 같은 취향을 갖고 싶었던 거였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대쪽 같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