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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겨울의 바람

by 마른틈

“후우ㅡ”


허공에 피어오른 입김이 잠시 번졌다가 흩어진다. 오르락내리락하던 변덕스러운 기온이 마침내 완연한 겨울에 정착했다. 푹푹 찌는 열대야에 뒤척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겹에 겹을 껴입고 두툼한 겉옷을 걸쳐도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이 참으로 무심하다. 아직 예쁜 니트 카디건도 다 입어보지 못했는데…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어제 난생처음으로 신춘문예라는 것에 투고했다. 실은 변덕 같은 마음이었다. 글을 쓴다며 요란하게 떠들고 다니지만 소설이라는 건 열네 살 이후로 처음 써본 데다, ‘완결’을 내본 것은 일생에 처음이었다. 애초에 공모전을 목표로 시작한 글도 아니었으니 당선을 기대하진 않는다. 게다가 내 생각에도 그 이야기는 진부한 플롯의 범벅이다. 다만 나의 ‘처음’을 의미 없이 공개 글로 발행하기엔 조금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중반부까지는 술술 써나갔지만, 이후부터 결말 전까지는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그저 벌벌 떨었다. 아, 역시 나는 소설에는 재능이 없다.

게다가 너무 바빴다. 소설이 아니어도 일상이 토 나오게 바빠 돌아버릴 것 같았다. 2주간 하루평균 세 시간밖에 못 잤다. 이는 주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금요일 나는 죽을뻔했다. 퇴근길, 미친 듯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발이 꼬여 몇 번을 넘어질 뻔했고, 그 상태로 교통사고가 날뻔했다. 그 순간조차 나는 큰일 날뻔했다는 자각보단, 그저 어서 집에 가 쓰러져 잠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글을 쓰는 내게 주변인들은 종종 “글감이 떨어지진 않니?”라고 물어온다. 그 질문은 나도 소설가들에게 곧잘 한다. 이번에 소설이라는 것을 써보니 역시 ‘창작’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소설가였다면 날마다 머리를 쥐어뜯고 해괴한 소리를 내며, 얼마쯤은 울부짖고 조금은 미쳐버린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창작자들에게 진심으로 박수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소설 대신 수필(이라고 쓰고 일기라 읽는)을 쓰는 나는, 지금까지 백몇 개의 글을 썼음에도 글감이 떨어질 기미가 없다. 메모장엔 아직도 수많은 글감이 쌓여 있고, 마음이 편치 못해 미뤄둔 글도 있는 데다, 일상의 순간순간에도 때때로 글감이 스친다. 내게 부족한 건 언제나 시간이다. 그러니까, 썩 삭막한 마음으로 길을 지나다 우연히 마주한 뜨개옷을 입은 나무 같은 것도 그런 거였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따뜻하고 두꺼운 옷을 꺼내 입지만, 비단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무도 옷을 입는다. 이것을 ‘트리니팅(tree knitting)’이라 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트리니팅은 객관적인 미의 기준에서 봤을 때 꽤… 못생겼다.

나는 뜨개질로 돈을 벌기도 하고, 심미안이 까다로운 편임을 고백한다. 그렇기에 솔직히 말해서 쨍한 색감에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법만을 잔뜩 더해 놓은 그 나무 옷을 보면 ‘아… 뜨는데 얼마나 재미없고 피로했을까.’ 싶은 생각을 절로 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 지루하고 쨍한, 못생기고 따뜻한 것들이 둘러선 나뭇길을 걸으며 문득 웃음을 흘린다. 지금은 트리니팅이란 것이 시민참여 활동으로 널리 알려져 꽤 대중적인 풍경이 되었지만, 초창기만 해도 장애인 직업훈련이나 노인 복지·재활 프로그램으로 많이 활용되곤 했었다. 그러니 이 못생기고 지루한 모양들은 투박한 노력이고 결실인 셈이다. 이 추운 겨울, 나무도 조금은 따뜻하길 바라는 그들의 느리고 온순한 마음인 것이다.


사실 겨울은 나에게 늘 야박한 계절이었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 어느 계절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여행지에서 마지막으로 찍었던 가족사진 속 어린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가 손수 떠준 뜨개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 그 계절이 겨울이었다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다.

어린 나는 책장 끄트머리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산타할아버지,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적어 매년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그 소원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나는 스무 살이 되어 독립하던 날, 지긋지긋한 마음에 그 책장을 버리고 나왔다.

중학생 때 선도부였던 나는 매일 아침 일찍 교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곤 했다. 스타킹 살 돈조차 없던 가난한 시절, 겨울은 참 얄궂은 계절이었다. 맨다리로 한겨울의 바람을 맞는 나를 보며 친구들과 선배들이 “안 춥냐”고 물어왔지만, 다리가 벌겋게 부어 터져 가면서도 나는 태연하게 “원래 몸에 열이 많아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 아무것도 없이 충동적으로 집을 뛰쳐나와 작은 몸 하나 겨우 뉠 곳에 독립하던 순간도 겨울이었다.


겨울이 오면 나는,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무탈을 기원한다. 그들이 바라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길, 미끄러운 빙판길에 넘어져 다치지 않길, 차가운 바람에 감기가 들지 않길. 혹시라도 아플 거라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빨리 낫길, 그 밤이 따뜻하고 평안하길. 마치 투박하고 못생긴 나무 옷과 같은 마음으로 빌어낸다.


아니, 아니다.

사실 그건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다. 산타할아버지는 나쁜 아이에겐 선물을 주지 않는다 했으니까. 그가 어릴 적 간절했던 소원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던 건, 어쩌면 내가 ‘나쁜 아이’ 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라도 착해지기 위해 부단히 애써보는, 지독히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음이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무탈을 빌며, 나는 이 겨울이 내게 조금만 덜 야박하길, 스스로를 탓하는 밤이 조금은 줄어들길 함께 소망한다.


올겨울에는 미루고 미뤄두었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뤄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렵다면 어렵겠고, 쉽다면 쉬운 데로 하면 될 일이었을 텐데 왜 지금껏 결심하지 못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언제나 빈 수레가 요란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이 겨울만큼은 그 수레가 가득 찬 채로 나에게 돌아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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