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축복의 순간들이었음을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by 황인찬

얼마 전 급하게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았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며 문서를 한 번 훑어보았다.
거기서 나의 이름을 보았고, 옆에 있는 괄호 사이에 적힌 한자 석 자가 눈에 들어왔다.

黃(황) 仁(어질 인) 燦(빛날 찬)

황인찬, 부모님이 내게 지어주신 이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황인찬’이라는 단어는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온전히 나타낼 수 있을까?
그에 관한 답을 생각해보았다.

먼저, ‘黃(누를 황)’은 나의 가문을 나타낸다.
내가 황경(黃瓊)을 시조로 하며 황희정승으로 유명한 장수황씨 가문을 본관으로 한다는 것이다.
전국 팔도에 장수 황 씨의 성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성씨는 ‘고유한 나’를 드러내지 못한다.


‘仁(어질 인)’은 어떤가?
仁은 장수 황 씨 가문 24대손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돌림자이다.
세대가 지나며 돌림자 仁을 쓰는 24대손은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에, 이 또한 나의 고유함을 드러낼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燦(빛날 찬)’에 대해 살펴보자.
燦은 나의 부모님이 고심하여 붙여주신 내 이름 석 자 중 마지막 글자이다.
즉, 내가 빛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던 부모님의 소망이 담긴 글자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장수 황 씨 24대손의 사람들 중,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해주는 중요한 글자는 마지막 한 글자밖에 없다.

“나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글자는 마지막 글자 燦(빛날 찬)이구나.”
“그동안 나는 빛나는 삶을 살아왔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어느덧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가로수 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걸으며 나는 천천히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가을이 스며들었는지, 나무들은 서서히 초록을 벗어던지고 붉은 옷자락을 천천히 여미고 있었다.
날은 저물어서 어두웠고, 가로등의 조명만이 거리를 비췄다.
이날은 유독 추워서 겨울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날씨였다.
가을과 겨울의 냄새를 맡은 나는 작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던 고3 수험생 시절,
그때의 나는 주변의 나무들, 가로수 길의 모습, 그곳의 향기,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들, 이 중 그 어느 하나도 기억에 담지 못했었다.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앞만 보고 걸어갔다.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눈과 귀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 비해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나는 빛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느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로수 길을 더 걸었고,
1년 간의 경험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나는 성인이 되었다는 짜릿함에 끌려 정말 많은 활동을 하고 싶어 했다.
알바를 했고, 교회에 나갔고, 학교에서 과대표를 신청했다.
또한, 운동, 연애, 여행 정말 모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무서울 것이 없는 망아지 같았다.
모든 것은 쉬워 보였고, 세상은 만만해 보였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같이 쉬운 곳이 아니었다.
돈을 버는 일은 다른 이의 싫은 소리를 듣는 일이었고,
익숙치 않았던 인간관계는 괴로웠다.
운동과 여행 또한 쉽지 않았고,
연애는 이 중에서 가장 어려워서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무 허술하게 쌓았던 만용의 성은 금세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한순간에 너무나 많은 실패와 절망을 겪은 나는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 때가 대략 3월~6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기의 나는 정말 한심하게도 이 실패의 원인을 ‘나’가 아닌 ‘부모님’에게서 찾았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정말 곱게 키워주셨다.
외동이었던 나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으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20살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할 수 있는 사소한 작업들을 하지 못했고,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역사, 시사, 정치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부모님이 나를 더 강하게 키워주셨다면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그 때의 나는 부모님께 받은 순수함 혹은 순진함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에 입학한 후 맞는 최초의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나는 고3 때 끊었던 강박증, 우울증 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은 침대에 누워있는 데에 소비했다.
그렇게 방학의 절반을 날려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나와서 물을 마시는데, 식탁 위에 놓여있던 책 한 권에 눈길이 갔다.

‘미움 받을 용기’

어머니가 읽고 계시던 책이었다.

우연한 끌림에,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밤을 새서 책을 완독했다.
책에 등장하는 심리학자 아들러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제시했다.

단 한 번의 용기면 충분하다.
라고.

나는 감명을 받았고, 다음날 정말 아주 작은 하나의 용기를 내었다.
약 한 달 정도 나가지 않았던 교회를 나갔다.
아직은 사람들이 두려웠고, 관계가 거북했다.
거북했지만, 아주 작은 용기를 더 내어 꾸준히 교회를 다니며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과 교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약간 큰 용기를 내어, 청년부 수련회, 교회 내 축구 모임 등의 다양한 교제에 참석했다.
그리고 더 큰 용기를 내어, 청소년부 수련회에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싱어를 하기도 했다.
교회에서는 형과 누나들에게 인간관계에서의 매너, 에티켓 등을 배웠다.


무기력에서 약간의 감사함을 느끼게 된 나는 또 다른 아주 작은 용기를 내었다.
동네에서 하는 작은 독서모임들에 나가기 시작했다.
두려웠지만, 아주 작은 용기를 더 내어 옆에 있는 여성분과 대화하며 친해졌다.
썸을 타다가 금세 깨지기는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더 큰 용기를 내어, 더 많은 썸의 경험을 했고 1번의 연애를 했다.
썸과 연애에서는 받기보다는 주는 사랑의 기쁨을 배웠고, 집착보다는 여유의 힘을 배웠다.


약간의 감사함에서 많은 감사함을 느끼게 된 나는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는 하나하나 천천히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올해 초의 빠름과 불안이 아닌 현재의 느림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철학은 내게 ‘단단함’과 ‘삶의 기준’을 주었고,
역사는 내게 ‘올바름’과 ‘정의’를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문학은 내게 ‘사랑’을 알려주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은
나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 강한 사람이 되도록 해주었다는 것을.
여러 갈등이 가득하고 악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지금 이 시대에서

아름다움의 가치와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는 선한 가치를 추구하는 순수함을 간직하게 된 것은
어머니가 매일 같이 나를 위해 새벽기도를 나가주시고 끝없이 나를 믿어주셨기 때문임을.


생각을 마친 나는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갔다.
현관에는 언제나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머니가 계셨다.

“밥 식겠다. 빨리 옷 갈아입고 밥 먹어~”

나는 얼른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식사했다.
아침, 점심을 먹지 않고 먹는 첫 끼였다.
너무나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저녁은 정말 감사했다.
평소에 편식을 많이 하던 고등학생 황인찬은 어느덧 편식을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후에 샤워를 하고 나오니 상쾌함이 느껴졌다.
매일 깨끗이 몸을 씻을 수 있음이 정말 감사했다.
양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게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닌 순수함과 선함을 추구하는 가치를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는 이날 깨달았다.
인생의 매 순간이 축복의 순간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