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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라는 이름의 무례

by 해이



"요새 해이님을 보면 삶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어제 오후, 느닷없이 이렇게 적힌 메시지를 받았다.
카톡 알림을 열기 전까지는 별 일 없던 하루였다. 회사에서 문서들을 정리하던 중이었고, 커피를 너무 빨리 마셔 심장이 괜히 빨리 뛰던 시간이었고, 퇴근까지 몇 시간 남은 평범한 오후였다. 그런데 화면에 떠오른 저 문장은, 누가 내 귀에 갑자기 얼음물을 흘려 넣은 것처럼 불쾌하고 찜찜했다.


나는 그 카톡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화면을 꺼버렸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먼저 떠오른 건 "뭐지?"라는 의문이었다.


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일면식도 없다.
취미 단톡방에서 여러 사람들과 몇 마디 나눈 정도의, 삶이 서로 스치지도 않은 타인일 뿐이다.
그런데 그가 내 삶 전체의 결론을 내려버렸다.
내 글 몇 줄로 그가 임의로 해석한 것을 조각처럼 모아놓고는, 마치 능숙한 의사처럼 진단을 내렸다.


삶을 포기하고 있다니.
그 말은 너무 과했고, 너무 무례했고, 너무 쉽게 던져졌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가난한 급여생활자라 컵라면 먹어용."

상투적인 단체 인사말에 나름의 장난을 섞으려던 게 화근이었을까.


나는 불편한 상황을 즐기지 않는다.

불필요한 딱딱함을 풀기 위해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서 나는 늘 광대짓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분위기에 맞게 행동하는 기본 눈치는 있으니, 저 위의 말이 아예 해서는 안 될 말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커뮤니티는 어린이들도 하지 않는 수준의 유치한 장난들이 오가는 곳이었고, 그 안에서는 오히려 잘 어울리는 농담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사람이 보기에는 그런 농담이

가난하다 → 컵라면으로 연명한다 → 삶 자체를 포기한 것 같다

이런 황당한 비약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요즘의 나는 조금 지쳐 있다. 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 나도 예외일리 없다.
밤마다 글을 붙들며 끙끙대고, 어떤 날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한 챕터를 쓰고 나면 다음 날은 체력이 바닥나 아무것도 못 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커다란 절망 같은 게 가슴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고, 또 어떤 날은 잘 모르겠는 미래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그런 감정의 파도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난 그걸 포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건 살아 있기 때문에 겪는 흔들림 같다.
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어떻게든 만들려고 허우적거리는 몸부림 같고, 잠깐 멈춘 것처럼 보여도 다시 쓰려고 펜을 들려는 태도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사람의 성장통에 가깝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단 며칠의 내 글자만 보고 정답을 아는 듯한 척으로 말을 던져버린다.
그게 참 이상하다. 마치 내가 열어놓지 않은 방문을 쾅 열고 들어와 앉아 있는 사람 같다. 내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내 배경도, 내 사정도 모르면서.


메시지를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또 다시 기분이 상했다. 단순한 무례함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걱정해주는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걱정이 아닌 판단이었다는 점이 더 불편했다.

걱정은 대개 조심스럽다.
판단은 대개 과하다.
그 사람의 문장은 조심이 없었고 과함만 있었다.


물론 인터넷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오래 알지 않아도, 별로 친하지 않아도, 남의 감정선이나 생활을 마음대로 짚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느낌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말한다.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어떤 상처를 내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메시지가 나에게 어떤 불편함을 불러 일으켰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카톡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상하게 화난다기보다 불쾌함이 먼저 올라왔다.

왜 저 사람은 그렇게까지 멀리서 나를 단정했을까?
왜 생판 모르는 내 마음의 방에 제멋대로 들어와 앉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이 사람은 내 삶이 진짜 어떤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가 느낀 것을 나에게 확인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 말은 걱정이 아니라 자기 만족이라는 뜻이었다. 자기가 본 대로, 해석한 대로, 느낀 대로. 단지 그 감정을 나에게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참 이상한 방식이다.


나는 "삶을 포기한 적은 없는데요." 라는 말 외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죄의식도 없었고, 무례함에 응답할 필요도 없었고, 그 사람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의무도 없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나는 삶을 포기한 적이 없다. 나는 다만 언제나처럼, 버티고 있을 뿐이다.
쓰고, 흔들리고, 울컥하고, 또 다시 펜을 들고. 어떤 날은 어둡고, 어떤 날은 밝겠지만 그 둘을 오가며 살아가는 게 인간이다. 나는 지금도 생의 안쪽에서 꾸역꾸역 걸음을 떼고 있다. 걷고, 미끄러지고, 다시 걷고. 그게 포기라면 세상 사람 대부분이 이미 포기한 채 살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버틴다. 필요한 만큼 흔들리고, 또 필요한 만큼 일어서며.

낯선 사람이 단정하던 '삶에 대한 포기' 따위는 내가 어디에도 허락한 적 없다. 나는 내 삶을 내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라도, 내일의 나를 믿고 있다.
그게 나의 방식이고, 나의 생존이고, 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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