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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풍지를 만들던 시간

내 삶의 바람은 어디서 새고 있었나

by 해이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사는이야기' 코너에 게재되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며 문풍지에 대한 주문 양이 늘었다. 1미터 길이의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 몸체에 양면 테이프를 부착하고, 문풍지를 붙여 3단 구조의 완성품을 만들었다. 제품끼리 달라 붙지 않도록 챙기고, 다시 일정한 길이로 잘라 규격에 맞춰 포장하는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테이프는 생각보다 질겨 금세 손끝을 할퀴었고, 하루 종일 반복되는 동작 때문에 손가락은 점점 뻣뻣해졌다. 작업대를 꺼내 놓고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오랜 시간 작업을 하면, 어깨는 굳어 돌처럼 뭉쳤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생활용품일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그 작은 문풍지 하나가 생계를 지탱하는 도구이자 바람처럼 스며드는 불안의 상징 같았다.



나는 본업인 디자인 일을 하면서 동시에 물류 센터 아르바이트와 문풍지 제작 부업을 이어 왔다. 쓰리잡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 정말 삶의 대부분이 일로 채워져 있었다. 낮에는 디자인 시안을 수정하고, 밤에는 물류 센터에서 신선 식품들을 포장하며, 남은 새벽 시간에는 문풍지를 만든다. 독촉 문자와 고지서가 날아올 때면 숨이 턱 막히는 듯했고, 휴대폰을 울리는 알림음들이 신체의 어느 부분보다 먼저 정신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작업대를 꺼내고는 그 앞에 다시 앉아 손을 움직였다. 빈틈을 두면 마음의 구멍으로 불안이 흘러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찬바람이 스며드는 집의 틈을 막기 위해 문풍지를 찾는다. 사는 게 얼마나 냉랭한지, 한겨울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 만큼이나 마음의 틈이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데 정작 그 문풍지를 만드는 나는 어디에 무엇을 붙여야 할지 몰랐다. 문풍지 하나를 포장할 때마다 내 삶에서 바람이 드나드는 틈도 함께 떠올랐다. 무거운 책임, 예기치 않은 고장, 병원비 영수증, 끊임없이 벌어야 하는 구조가 곳곳에 구멍처럼 나 있었다. 사람들은 손쉽게 '문풍지를 붙여봐라' 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집이라는 공간에나 해당되는 해결책이었다. 삶의 틈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어디가 먼저 새고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문풍지를 일일이 손으로 자르고 다듬는 일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벼운 노동이 아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작업대 위를 꾸릴 때, 두 손은 이미 통증으로 굳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 작은 조각들을 붙이고 또 붙이며 나는 무엇을 부여잡고 버티는 걸까. 한 번은 작업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문풍지를 일정한 길이로 자르기 위해 대는 자, 손가락에 묻은 접착제 찌꺼기, 바닥에 떨어진 테이프 조각들. 그 장면이 이상하리만치 내 삶의 단면과 겹쳐 보였다. 일정한 패턴으로 작업을 반복하지만, 그 행동들이 삶의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를 계속 잘라내며 적당한 크기로 맞춰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적당함은 언제나 나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문풍지를 만드는 동안 세상은 계속해서 겨울로 향했다. 사람들은 따뜻한 집을 만들기 위해 문풍지를 사갔다. 그 바람막이가 누군가의 겨울을 조금이라도 덜 춥게 해 준다고 생각하면, 그 일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작 한기가 어디서 스며드는지 알 수 없는 하루들을 건너고 있었다. 겨울 바람을 막아주는 건 문풍지였지만, 생활의 바람을 막아주는 건 그 문풍지를 만드는 노동이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은 바람을 막지 못했다. 노동은 그저 또 다른 바람이었다. 버텨야 하는 바람, 밀려오는 바람, 지나가길 기다리는 바람.



작업을 마치고 난 뒤 손바닥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손톱 사이사이마다 양면 테이프의 조각들이 끼어 있었다. 그걸 떼어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오히려 그 흔적이 나를 조금은 안정시켰다. '내가 무언가를 붙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삶의 허공을 붙잡아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노동은 내 삶을 흔들어대는 바람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않았지만, 그 바람을 견딜 수 있는 무게를 조금은 얹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문풍지가 바람을 완전히 막지 못하듯, 노동도 삶의 칼바람을 완벽히 차단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없다면 나는 훨씬 더 쉽게 무너지고, 더 빠르게 좌절했을 것이다.



문풍지는 결국 '틈을 인식하는 사람'이 붙이는 것이다. 틈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나는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그 구멍들이 어디인지 천천히 찾아가고 있다. 문풍지를 만들던 날들의 기억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은 나에게 겨울 바람의 성질을 가르쳐주었고, 내가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막아야 하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려줬다. 문풍지를 만들며 버텨낸 시간들과 지켜낸 가족들은 언제가 되어도 손끝의 지문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의 가장 깊은 틈에 붙여두는, 아주 작은 한 조각의 바람막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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