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의 내가 70세의 나에게 그리고 70세의 내가 40세의 나에게
2055년에 계신 저의 모습에게.
지금 저는 2025년에 있습니다. 만 40세라는 나이가 이렇게 무거운 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스무 살의 저는 마흔이 되면 모든 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흔들림 없이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저는 아직도 스스로를 알아가는 중이고, 여전히 많은 것들 앞에서 흔들리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일을 반복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요동칩니다. 이유 없이 슬퍼지기도 하고,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가, 또 어떤 날은 미래가 너무 막막하게 느껴져 주저앉고 싶어 집니다. 몸은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고, 사소한 통증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70세의 저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예전보다 아픔을 덜 두려워하나요? 혹시나 몸의 통증을 삶의 일부라 여기며 담담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셨을까요? 그리고 마음은 좀 더 너그러워지셨나요?
지금의 저는 미래의 제가 궁금하면서도 두렵습니다. 혹시나 지금 이 흔들림 들을 끝내 이겨내지 못한 채 가라앉은 마음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켜켜이 쌓인 상처들이 익숙해져 버려, 되려 그 무게를 놓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을까 두렵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 자신을 자주 못 믿습니다. "당신은 결국 실패할 거야.", "인생이 이렇게 힘든 채로 계속 이어질 거야.",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귓가를 울립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보다 조금 더 삶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자신을 용서할 줄 알고, 세상을 덜 두려워하는 당신을요.
저는 지금 매일같이 글을 씁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붙잡기 위해 쓰고, 살아보려고 쓰고, 어떻게든 내일의 저를 조금은 괜찮은 형태로 남기기 위해 씁니다. 부디 70세의 저는 글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기를 바랍니다. 글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을 잡고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저는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햇빛이 잘 드는 아늑한 집에서, 조금은 안정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계신가요? 병원 기록이나 몸의 변화에 큰 두려움을 갖지 않고, 그저 '살아 있는 하루'를 누리고 계십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 혹시 지금도 외로우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외로움이 당신을 정의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마흔에 이르러 인생은 "어떻게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이겨냈느냐"를 기준으로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들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조금이라도 평온하다면, 그것은 제가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낸 날들의 결과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디 당신 자신을 원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예측 불가능함이 우리를 망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니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시든, 저는 그 모습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40살의 제가 하루하루를 버티며 여기까지 온 이유가 결국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닿기 위해 제가 오늘도 살아갑니다.
2025년의 제가 드립니다.
해이야,
여기 2055년의 네가 답장을 보낸다. 이제 나는 칠십이 되었고, 세상의 속도와는 조금 다른 박자로 천천히 걸어가는 나이가 되었단다. 마음이 급하게 뛰는 일도 드물고, 억지로 무언가 이루어 내려고 애쓰는 일도 거의 없는 나이로구나. 아마도 너는 지금 상상하기 어렵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미안해지고, 동시에 고맙기도 하단다. 그 마음으로 천천히 답장을 써본다.
2025년의 나에게,
네 편지를 읽었다. 그 시절 너는 정말 고단했었지.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고단함이 네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구나. 마흔의 너는 자신을 자꾸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무너졌다가 또 아무 일 없던 듯 일어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네가 지금 이 답장을 받으며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면 마음이 조금 저려온다.
해이야,
네가 걱정한 것들 말이다. 그중 반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머지 반은 네가 생각한 만큼 무섭지 않았단다. 너는 너무 많은 두려움을 혼자 짊어지고 살았지. 건강도, 미래도, 관계도, 글도. 그러면서도 너는 단 하루도 포기하지 않았어. 그 포기하지 않음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란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 많더구나.
'아,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건 마흔의 내가, 그때를 버텨줬기 때문이구나.'
네가 묻던 것들, 하나씩 대답해 줄게.
먼저, 아픔은.. 여전하단다. 나이 들면 어디든 성한 곳이 없다는 말, 틀린 말은 아니더구나. 그래도 예전처럼 하루를 온동 방해할 만큼 두렵지는 않아 졌지. 통증을 삶의 일부로 이해하게 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질 거야. 몸이 조금 아파도, 그게 내일을 끊어놓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나이가 됐거든.
그리고 마음.
너는 "혹시 내 마음이 끝내 가라앉은 채로 굳어버리진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 안심하렴. 그렇게 되지 않았단다. 나는 지금 너보다 훨씬 느긋하고, 훨씬 너그럽게 되었어.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너그러워졌지. 언젠가부터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살지 않게 되었고, 모든 감정을 일일이 죄처럼 여기지 않게 되었어. 마음이 늦게라도 이렇게 넓어졌다는 게, 나도 참 신기하구나.
외로움에 대해 물었지.
해이야,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완전히 외롭지 않게 살 수는 없는 거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외로움이 있어도 그 외로움이 나를 파먹지 않는다는 점이야. 나는 지금의 외로움을 옆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있단다. 예전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외로움도 결국 삶이 주는 자연스러운 그림자라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리고 글.
너는 내가 계속 글을 쓰고 있기를 바랐지?
그래, 쓰고 있다. 예전처럼 치열하게 쓰고 있진 않지만, 글은 여전히 내 삶을 감싸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란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아주 느리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네가 희미한 등불처럼 지켜낸 글쓰기 덕분에 나는 지금도 계속 나를 이야기하고 있구나.
네가 끝에 남긴 말,
"당신에게 닿기 위해 제가 오늘도 살아갑니다."
그 부분을 읽는데,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눈앞이 흐려졌단다. 너는 늘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우면서도, 미래의 나를 위해 살려고 했구나.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거란다. 고맙다, 해이야. 정말 고맙다.
그리고 부탁했던 것,
"자신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
그 부탁, 지키고 살았다. 이 나이의 나는 나를 탓하지 않는단다. 돌아보면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고, 후회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고 있지. 그건 너의 바람이었고, 나는 그 바람을 따라 살았단다.
저기 2025년의 너에게 마지막으로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너는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고, 훨씬 더 멀리 갈 사람이었다.
그때는 몰랐었지. 하지만 지금 나는 네가 흘린 눈물과 버틴 날들이 모두 헛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단다. 그 시간들이 결국 나를 평온으로 데려왔음을 말이다.
그러니 부디,
지금의 너도 너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고
나는 네가 버텨낸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란다.
고맙고, 사랑한다.
2055년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