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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 전승되어져 온 혼인의 방법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하여

by 해이


새벽 공항은 늘 그렇듯 무표정했다.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가 사라졌고, 그 위로 또 다른 그림자가 겹쳤다. 삶이 이곳을 통과한다는 사실만 남았을 뿐, 그 누구의 이야기도 머무르지 않았다.


오전 5시 42분, 비행기 문이 열렸다.

명의 여자가 천천히 내려왔다.

잠을 설친 얼굴, 손에 꽉 쥔 서류봉투, 말하지 않아도 읽히는 불안.

이 나라에서 이들을 '선녀들'이라 불렀지만, 그 단어는 존엄을 뜻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포장지 뒤에 감춰진 한 문장만 의미했다.

"...다."


입국장 앞에 검은 패딩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가슴에는 금속 명찰이 붙어 있었다.


<선녀결혼중개업체 - 사슴매니저>


그는 입꼬리만 올린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서류! 아 서류 꺼내라고요. 서류! 내가 안!전!하게 보관해줄게. 시간없어 빨리 꺼내요."


'안전'은 그가 가장 자주 쓰는 단어였다.

누구의 안전인지, 누구를 위한 보관인지 설명한 적은 없었다.

여자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봉투를 건넸고, 그 순간 여권은 그들의 삶에서 분리되었다.


사슴매니저는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선녀들은 그 뒤를 따라갔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짙은 선팅의 승합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 문이 열리자 싸늘한 냄새가 새어 나왔고, 네 사람은 말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도 "편하게 앉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동이 아니라 수송이었다.


차 문이 닫히자 싸구려 방향제의 냄새가 실내에 퍼졌다.

이 나라에서 돌아가기 어려운 이유가 그 소리 하나에 담겨 있었다.


사슴매니저는 룸미러로 그들을 훑었다.

마치 재고를 확인하듯, 손상 여부를 점검하듯.

그는 차를 도로로 몰며 말했다.


"두 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니까, 예쁘게 앉아있어. 알았죠? 우리 나무꾼들한테 예쁘게 보여야 할 거 아냐?"


나무꾼.

그 단어 하나가 모든 걸 설명했다.

사랑을 배우려는 사람도, 인연을 찾는 사람도 아니었다.

여자를 사고, 부리고, 둘러앉히고 싶어하는 남자들.

동화의 순수를 기생충처럼 빨아 먹는 존재들.


승합차는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가로등이 사라지고, 낮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선녀들은 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언어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은 침묵이 가장 정확한 언어였다.


한 시간 반이 지나자 차는 어딘지 모를 골목으로 진입했다.

낡은 다세대 건물 앞에서 멈췄다.

사슴매니저가 말했다.


"첫 번째 집입니다. 거기, 보라색옷. 내려."


여자 중 한 명이 천천히 내려섰다.

현관 앞에는 쉰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두 손을 비비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반가움이 아니라 소유욕에 가까웠다.


"아이고... 먼 길 오느라 고생했지. 들어와요."


그는 그녀의 캐리어를 빼앗듯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밀리듯 그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울렸다.


승합차는 다시 움직였다.

두 번째 집, 세 번째 집.

각 집 앞마다 다른 남자들이 서 있었다.

어색한 미소와 뻣뻣한 팔, 무언가 숨긴 듯한 조급함.

그들의 눈에는 사람이 아닌 도착한 물건만 비쳐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어둡고 좁은 골목 앞에서 내렸다.

그 길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말없이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들어갈지 직감했다.


사슴매니저는 마지막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부로 서로의 가족이십니다. 잘 지내보세요."


남자는 서류를 받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개짓이었다.


여자는 마지막으로 공항 쪽을 바라봤다. 공항은 너무 멀었다. 돌아가는 길은 이제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사슴매니저가 차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자, 보자. 다음 주에는.. 다섯명이랬지?. 좋네, 좋아."


그 말이 바람처럼 골목에 흩어졌다.


승합차는 다시 출발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누군가의 삶이 방금 배달되었다는 사실도 바람처럼 지나가 버렸다.


골목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여자는 문간에 선 남자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문턱을 넘었다.


이 나라는 그녀들을 하늘에서 온 선물이라 불렀지만, 그 실상은 단 하나였다.


그들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의 방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문은, 아무 소리 없이

천천히 닫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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