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의 숫자, 그리고 우리가 잃은 언어
치킨집의 불이 하나둘 꺼져가던 늦은 밤, 세 식구가 좁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튀김 기계의 잔열이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있었고,
기름 냄새와 불빛이 뒤섞여 하루의 마무리를 알렸다.
아버지의 앞치마엔 기름 얼룩이,
어머니의 손등엔 설거지 물기가 마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밤은 고단한 하루를 달래기 위한 술자리가 아니었다.
이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작은 회의였다.
재하는 낮부터 준비한 서류와 그래프를
노트북 폴더에 정리해두고 일부러 마감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아이패드를 꺼내 화면을 부모님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아버지, 이상합니다. 지난번 과태료 처분이 내려졌는데도
관리소는 등본 교부를 계속 거부하고 있어요.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에요. 버티는 이유가 있어요.”
아버지는 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숨을 고르고,
깊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그래, 나도 그게 제일 찜찜하다.
내가 회계 전공이잖니. 그래서 고지서를 한 줄 한 줄 살펴봤는데…
단순 실수라고 보기엔, 설명되지 않는 구멍이 너무 많더라.
이건 교묘하게 계산된 과다청구야.
내가 직접 EPS실에 들어가 계량기 수치를 확인했거든.
그런데 고지서에 적힌 숫자는 전혀 맞지 않았어.
특히 열병합 난방.
단위부터가 복잡하게 써 있어서
입주민이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어놨더라.
주택용 할인제도도 숨기고, 결국 ‘그냥 내라’는 구조야.
여름·겨울엔 사용량이 급등하잖니?
그걸 핑계로 청구액을 슬쩍 부풀리는 거야.
신문에선 ‘에너지 요금 폭등’이라고 떠들면
사람들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지.
하지만 실제로는, 눈먼 돈을 노리고 만들어진 시스템적 수법이지.”
아버지는 잔을 들어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잔속의 거품이 부서지며 그의 말이 더 단단해졌다.
“아파트는 그래도 견제하는 주민이 많아서 쉽게 못 하지.
하지만 오피스텔은 달라. 단기 임차인, 청년 세대가 많으니까
감시의 눈이 닿지 않아. 그 틈을 타서 과다청구를 해도
아무도 제대로 따지질 않지.
그게 쌓이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야.
그걸 아는 구청도 침묵하고, 관리인은 버티고.
도대체 누구를 위한 행정인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잔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당신이 순진한 게 아니라,
보통 사람이라면 ‘실수일 거야’라고 믿는 게 상식이에요.
그런데 고치지도 않고, 해명도 없이 거부만 계속한다면
그건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이죠. 의도적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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