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위에 또 하나의 플러스를 방해하는 소수의 탐관오리들
재하의 부모님은 오늘도 늦은 밤까지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따끈하게 포장된 치킨 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배달 기사들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하나둘 챙겨 나갔다. 마지막 기사가 문을 닫고 나서야 분주했던 매장에 조용한 숨결이 찾아왔다. 주방에는 아직 튀김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바닥에는 방금까지 오간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남편은 장갑을 벗어 조리대 위에 올려두고, 아내는 바닥을 훑으며 청소를 마쳤다. 몇 번의 손길만에 매장은 단정해졌다. 간판 불을 끄자 바깥의 빛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형광등 불빛만 남았다. 하루 종일 기름 냄새에 절어 있었던 옷가지들이 의자 위에 걸려 있었고, 땀에 절은 두 사람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둘은 카운터 옆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땄다. ‘칙—’ 소리가 긴 하루를 정리하는 듯 울렸다. 잔에 담긴 거품이 살짝 일어나며 서로의 얼굴을 비췄다.
“여보, 오늘은 손님이 참 많았네.” 아내가 잔을 들어 보였다.
남편이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맞아. 민생지원금 덕이지. 지난 1~2달 동안은 숨통이 좀 트였어. 이런 날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 때도 그랬지만, 이렇게 직접 체감하니 알겠네. 세금은 잘 써야 한다고들 하지만, 한두 달만 봐도 효과는 분명해. 사람들의 표정도 달라졌잖아. 작은 여유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니.”
남편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근데 있잖아… 오늘 장사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민생지원금이 숨통을 틔워주듯, 오피스텔 관리비만 원리·원칙대로 민원 처리돼서 과태료 처분만 제대로 내려지면 관리인의 과다청구가 사라질 거야.
그러면 매달 10만, 20만, 30만 원의 소득이 늘어나잖아. 그게 또 다른 민생지원금이지 않겠어? 가정마다 이런 돈이 늘어난다면, 숨통이 얼마나 트이겠어.”
아내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맞장구쳤다.
“맞아. 이게 바로 플러스에 더해 플러스 효과가 될 수 있네. 전국 자치단체 건축과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2023년에 개정한 「집합건물법」만 제대로 집행하면, 전 국민까지는 아니어도 원룸·다가구·복합빌딩·오피스텔 상가 임차인과 입주민들에게는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또 하나의 민생지원금 효과가 생기는 거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다수의 건축과 공무원들은 최선을 다해 올바른 행정을 하겠지. 하지만 내가 경험한,
소수의 구청 건축과, 감사과 직원들은 그렇지 않았어. 민원은 30일 안에 처리하게 돼 있잖아. 거기에 증거까지 명확하다면 절차만 따르면 한 달 안에 끝날 일이야. 그런데 그걸 안 해. 일부러 지연시키고 꼼수를 쓰는 거지.”
아내가 물었다.
“그럼 관리인들은 왜 그렇게 꼼수를 부리는 거야?”
남편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정리했다.
“첫째, 예전에는 관리인을 선임하지 않아 부존재인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2020년 2월 개정된 관리인 신고제도가 신설되면서부터 꼼수가 시작됐어. 관리인을 선임했다며 고유번호발급과 사업자등록증만 내세워 운영하지.
000 관리단이라고 관리비 고지서에 적시되어 있잖아.
둘째, ‘선임은 했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구청에 신고는 안 해. 과태료는 금액이 적어 관리인이 이를 악용하지,
일상의 생활 법률을 자세히 모르는 상가 임차인과 입주민들을 속이는 도구로 쓰는 거지. 여기에서 온갖 법기술이 난무하지, 이런 법꾸라지들이 구청 담당부서와 결탁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임차인, 입주민의 몫이지.
물론 구청 담당부서의 하위직 공무원보다 고위 상급자의 책임이 가장 크지.
셋째, 규약과 의사록은 ‘있다’ 고만하고 절대 보여주지 않아. 열람이나 발급을 요구하면 ‘보관 중’이라며 시간을 끌고, 정작 청구하면 등본 교부를 거부해. 내용증명을 보내도 세 번이나 반송됐잖아. 문 앞까지 간 서류를 ‘받지 않았다’고 버티는 거지.
하지만 의사표시의 효력 발생시기(=수취 거부 시), 수취를 거부한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에 관한 증명책임의 소재(=수취를 거부한 상대방)이라는 게 대법원 판례야.”
아내가 짧게 정리했다.
“비워 놓거나, 말만 남기거나, 보여주지 않거나 법률을 위반하거나, 최종목표는 과다청구 및 각종 명목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고 과태료를 피하려는 법꾸라지 수법.”
“맞아. 결국 뿌리는 하나야. 사람들이 일상의 생활 법률을 잘 모른다는 것. 그 틈을 악용하는 거지. 법을 아는 사람 앞에서는 꼼짝 못 하지만, 대다수 일반인이 모른다는 걸 노리는 거야.”
아내는 다시 물었다.
“그럼 구청은? 왜 절차대로만 안 하는 거야?”
남편은 창밖 꺼져가는 오피스텔 불빛을 바라봤다.
“구청은 집행을 해야 하는데, 세 가지로 피해.
하나, 지연. ‘검토 중’이라는 말로 시간을 끌어.
둘, 회피.
법적 구속력이 없는, ‘분쟁조정위원회‘
결국 건설사나 시행사, 이해관계인 측 관리인에게만 유리한 제도,
—겉모습만 그럴싸한 ‘분쟁조정위원회로 가라’며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떠넘겨 버려. 그런데 이 분쟁위원회도 마찬가지야. 원칙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제도지만, 실제로는 관리인 쪽처럼 자산이 많은 쪽이 변호사를 선임하면 결국 그쪽에 유리한 결론으로 기울 수밖에 없어. 서민들은 설령 돈이 있어도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기 어렵고, 결국 망설이거나 포기하게 되는 거지.
셋, 중립의 탈. ‘상충’이라는 단어를 꺼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 일을 단순히 주장 대치로 만들어버려. 그 순간 집행은 멈추는 거야.”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서민들한테 부담만 지우는 거네. 이건 무책임이 아니라 방치야.”
남편이 힘주어 말했다.
“원래는 구청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2023 개정된「집합건물법」 26조 5의 의해 자료 제출 요구만 제대로 받아내면, 조사 후 바로 과태료 처분이 가능해. 그 결정문이 나오면 피해자는 민사든 형사든 바로 고소·고발하기가 훨씬 수월하지 그러면 변호사비 같은 큰 비용도 안 들어. 그런데 이 절차를 회피하니까, 결국 서민들이 처음부터 증명하기 위해 막대한 법률 비용을 다 감당해야 하는 거야. 법은 있는데 집행을 안 하니, 사람들이 지치고 포기하게 되는 거지.”
아내가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면 이건 단순 태만이 아니라 직무유기네. 경우에 따라선 직권남용이지. TV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말처럼 말이야.”
“맞아.” 남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더 깊이 들어가면 자치단체 장들과 결탁된 구조일 수도 있어. 건설사, 시행사, 위탁업체, 지역 윗선이 얽혀 있으니 공무원들은 승진을 의식해 집행을 회피하지. 그 사이 상가 임차인과 입주민들은 매달 수십만 원이 새고 있어. 합치면 민생지원금만큼 커지는 돈이야.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이 특정 집단의 배를 불리는 셈이지.”
아내는 잔을 내려놓고 잠시 남편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결국 자치단체의 행정이 원리·원칙대로만 집행했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됐다는 거네. 그래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게 다행이야.”
남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버텨야지. 우리가 멈추는 순간, 그들은 비웃음을 터뜨릴 거야.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아무 흔적도, 근거도 남지 않겠지. 멈춘다는 건 결국 그들의 세상을 지켜주는 일이 될 뿐이야. 이것은 거창한 정의 이전에, 서민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야. 이제는 그 몸부림을 지식과 법률의 언어로 대응해야 하는 거지. 아는 것의 힘을 보여줘야 해.”
아내가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 여보 우리가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우리 아들 재하 덕분이야. 법령정보센터에서 자료 챙기고 파일 묶어서 보내준 게 큰 힘이 됐잖아.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거야.”
남편이 미소 지었다. “그래. 내가 시작했지만, 재하가 옆에서 서류 챙겨주고 도와줬으니 가능했지. 우리 셋이 함께 버틴 거야. 가족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야.”
아내가 마지막 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런데 관리규약… 민원 결과는 나왔어?”
남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 구청이 언제「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을 제대로 지키는 걸 봤다고… 늘 ‘검토 중’이란 말만 남기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민원 신청서에「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위반 조항을 적시하여 위반하면 감사청구 민원 신청한다고 했어”
아내가 말했다.
“우리 세 식구가 잘 협력했잖아. 당신은 위축되지 말고, 기본 원리·기본 원칙대로 끝까지 해보자고. 결국엔 진실이 드러날 거야.”
남편은 잔을 들어 올렸다. 두 잔이 부딪치며 ‘딱’ 소리가 매장에 울렸다. 작은 매장 안에 울린 그 소리는 단순한 건배 소리가 아니라, 다시 버틸 힘을 다짐하는 울림이었다.
남편은 잔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음을 더 크게 만들지 못하게 막는 자, 법을 알면서도 집행하지 않는 자—그들이 바로 탐관오리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문장을 쓰고, 내일도 절차를 밟을 것이다.
기본원리와 기본원칙 위에, 플러스에 또 하나의 플러스를 더하기 위해. 이 싸움은 단순한 민원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지켜내는 작은 불씨이며, 일상의 생활 법률이야말로 우리 안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조건임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라고 그는 깨달았다.
오늘 아버지가 기록으로 세운 한 문장은,
내일 재하가 살아갈 언어의 첫 줄이 된다.
세상은 그렇게, 한 세대의 민원에서 다음 세대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재하는, 빛을 잃은 일상의 언어를 다시 찾는 여정의 다음 페이지를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