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처리 결과 통지서: 관리인 부존재(부과 주체 없음)로 과태료 취소]
저녁 여섯 시, 튀김기의 열은 바다처럼 끓어오르고, 주문표는 벽에 새김판처럼 줄줄이 매달렸다. 기름이 튀는 소리, 벨이 울리는 소리, 배달 포장지의 바스락 거림이 한데 섞여 있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짧게 떨렸다. 화면에 붉은 제목 하나가 떴다.
[민원처리 결과 통보: 관리인 부존재(부과 주체 없음)로 과태료 취소]
그는 화면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부존재로 취소’라는 말은, 과태료 부과할 당사자(관리인)가 법적으로 확인되지 않아 과태료를 매길 수 없다는 뜻. 주소가 없는 청구서, 빈 의자에게 내린 처분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집합건물법」 제26조 제5항과 시행령 제6조는 분명히 말한다—관리인 선임 여부는 구두가 아닌 문서로, 제출된 자료로 확인해야 한다고.
닭을 뒤집는 손끝에 묘한 떨림이 전해졌다. 기름이 튀며 팔목을 스쳤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데 머릿속은 다른 세상에 있었다. 기름 소리 사이로 법조문이, 문장과 문장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바삭, 하고 치킨이 떠오르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허기보다 먼저 올라온 것은 뜨거운 허탈감이었다. 구청은 처음엔 “관리인이 제출한 자료로 확인했다”더니, 이제 와선 “선임 자체가 없다”라고 말을 바꿨다. 존재한다고 하던 사람이 사라졌고, 책임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기름 냄새가 갑자기 매캐해졌다.
닭을 건져내며 그는 중얼거렸다. “법은 자료 제출받아 확인하라 했잖아… 확인했다면서 왜 부존재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주문이 밀려들었고, 아내의 “두 마리 세트 하나 더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말은 멀게 들렸다. 기름 속에서 튀겨지는 닭처럼 그의 생각도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집게를 쥔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머릿속에서 법의 조항들이 번쩍였다. 법은 ‘자료를 제출받아 확인하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담당 주무관은 실제로 그 자료를 근거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관리인이 ‘자신은 선임된 적이 없다’는 부존재 자료를 다시 제출해 과태료가 취소되었다. 즉, 법이 요구한 절차는 지켜졌는데 결과는 뒤집혔다. 그렇다면 누가 공무원의 직무행태를 인정하겠는가. “문서로 확인하라”는 말은 곧, 책임을 문서에 새겨도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문서를 스스로 지워버렸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지웠는가.
그의 눈앞에서 치킨이 익어갔다. 타이머가 울려도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가 불러서야 그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닭을 꺼냈다. 바삭한 껍질이 깨지는 순간, 그의 안에서는 또 다른 결심이 터졌다.
주문표를 붙잡은 손끝이 잠시 떨렸다. 그는 동시에 두 가지를 했다. 닭을 건져내며, 머릿속에서 문장들을 끌어모았다. ‘시행령 제23조 가목부터 너목까지’—등본 교부 거부, 회계자료 비치 의무, 공고 및 통지, 보관과 열람… 위반 항목을 조목조목 정리한 민원 문장들이 속으로 줄을 섰다. 며칠 전 보낸 최후통첩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관리인과 구청, 도시관리국 건축과(주무관·과장)에 동시에 통보했다. “이번엔 반드시 법대로 처리하십시오. 관리인은 등본 교부 청구에 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시행령 제23조 각목 위반사항 전부를 민원으로 신청하겠습니다.” 그 문장은 경고가 아니라 시한이었다.
닭이 튀겨지는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은 계산기를 두드리듯 분주했다. ‘사진 첨부, 위반표 정리, 통보문 재작성…’ 기름이 튀어 팔을 데워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치킨 냄새를 맡고 웃으며 들어왔지만, 그는 그 웃음 사이로 법의 공백을 보았다.
일련의 사건이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묘했고, 계획이라기엔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 흐름을 바라보며 그는 서서히 이해했다—이건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누군가 써 내려간 시나리오 같았다. 그 안에서 자신은 늘 조용히 등장했다 사라지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 그는 그 각본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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