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소행성은 새빨간 피를 남긴다. 내가 블랙홀에 빠져 들어간다면 난 7초 뒤에 죽을 것이다. 만약 누가 그런 나를 보고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모든 걸 먹어 치우는 블랙홀의 중력은 감당할 수가 없다. 빠져나올 수가 없다.
주와의 첫 마주침은 중학생 때였다. 작고 왜소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아이. 온 역시도 3학년 때 옆 반이 아니었으면 존재조차도 모르고 지나갈 법했다. 진정한 첫 만남은 고등학생이 된 첫날이었다. 친구들과 다른 고등학교에 붙은 온은 입학식 날까지 긴장했다. 동네에서 초, 중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 없는 학교는 이번이 처음이다. 입학식 날, 번호순으로 앉으라는 말이 없었기에 온은 창가 쪽 맨 뒤에 앉았다. 한 아이가 온의 옆자리에 가만히 서서 고민하더니 바로 앞자리에 가 앉았다. 자리가 다 채워질 때까지 조용하던 아이는 옆에 앉은 짝이 어디 중학교에서 왔냐고 물어봤을 때 입을 처음 열었다.
“k중.”
생각났다. 앞에 앉은 아이의 얼굴은 작년에 종종 보던 얼굴이었다. 쉬는 시간에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도 k중인데 너 3학년 때 9반이었지?”
아이의 이름은 ‘주’라고 했다. 주가 되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아이. 그저 흘러가던 온은 주의 궤도에 진입했다. 조용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빨리 친해졌다. 눈에 띄지도 않던 주가 내 고등학교 생활의 시작을 맡았다. 같이 점심을 먹고, 매점에 가고, 도서관에 갔다. 소설책을 좋아하는 온과 달리 주는 과학책에 관심이 많았다. 주를 따라 읽어보려 시도했지만 한 장,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멈춰서 생각해야 하는 과학책은 온과 맞지 않았다. 그런 온에게 주는 과학 지식을 자기 식대로 알려주곤 했다.
“우주는 팽창하면서 점점 질서 정연해진대. 우리도 자라면 자랄수록 질서를 찾아가지 않을까. 난 더 완벽해지고 싶어. 절대 무질서한 지금과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거야.”
“내가 아주 빛보다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면 어제의 너를 만날 수 있어. 어쩌면 난 내일의 나일 수도.”
주가 하는 말은 과학책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주가 해주는 말을 시작으로 온과 주는 미래 인간이 되기도, 세포보다 작아져서 서로의 몸속을 탐험하기도 했다. 온은 주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주와 4개월을 보내면서 주의 가족 얘기도, 어릴 적 얘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온이 엄마와 싸운 날 주에게 투정을 부려도 주는 그저 그랬구나, 하며 조용히 달래줄 뿐이었다. 하얗고 마른 외형까지 어쩌면 주가 외계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걱정과는 달리 주 덕분에 한 학기를 잘 보낼 수 있었고 어느새 여름방학이 됐다. 부모님은 주를 많이 궁금해하셨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온의 얘기에 나오는 친구들은 다양했는데 요즘엔 주 얘기만 한다고 주에게 관심을 보였다. 온과 주는 가끔 학교 도서관에서 만났다.
“주, 오늘은 우리 집에서 책 볼래?”
주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그래도 되냐고 물어봤다. 온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알리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온의 엄마가 주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온과 주가 짐도 놓기 전에 식탁으로 끌고 가 간식을 줬다. 온의 엄마는 주가 궁금했다.
“주라고 했지? 우리 온이가 네 얘기를 많이 해서 아줌마가 너무 궁금했어. 네 덕분에 온이가 어려워하던 과학에 관심을 보이더라.”
“온이랑 저랑 다른 분야의 책을 좋아해서 서로 새로운 걸 많이 알게 돼요. 저도 요즘 시랑 소설이 재밌더라고요.”
간식을 더 주겠다는 온의 엄마를 말리고 주와 함께 온의 방으로 갔다.
“너의 어머니 친절하시다.”
결국 온의 엄마는 간식을 우리 손에 들려줬고 주가 간식을 방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었고 또다시 상상 속에서 놀았다.
“블랙홀이 사실은 우주 너머의 청소기 인지도 몰라. 우리가 행성이라 부르는 먼지 덩어리들이 거슬려서 누군가 청소기를 갖다 댄걸 거야. 내가 집에서 청소기를 돌리다가 모기를 청소하게 됐는데 모기가 과연 고통을 느꼈을까? 내가 블랙홀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블랙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데?”
“책에는 뭔 3가지 정보만 남기고 다 소멸된대. 들어가는 순간 소멸되는 거면 고통을 못 느끼지 않을까.”
“그렇지만 주, 모기는 아마 고통을 느낄 거야. 우주의 청소기든 뭐든 일단 여기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잖아. 우리도 대왕 청소기가 우릴 빨아들인다면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
주는 온의 말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때 온의 엄마가 저녁 먹으라며 우리를 불렀다. 주는 깜짝 놀라 시간을 확인한 뒤 집에 가봐야겠다며 서둘렀다. 엄마와 내가 저녁은 먹고 가라 했지만 주는 할머니가 기다리셔서요, 라는 말을 하곤 감사인사와 작별인사를 했다. 온은 엄마와 저녁을 먹으며 주와 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온의 엄마는 재밌게 듣다가 나에게 물어봤다.
“주는 할머니랑만 같이 산다니?”
온도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아까 했던 얘기를 이어갔다. 주에게 가족 얘기를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 얘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할머니와 같이 산다는 건 알게 됐다. 주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온과 주가 아직 1학년 1학기만 같이 보냈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더라도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2년 반은 더 있다. 천천히 알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