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사랑 안기 16화

온우주(5)(완)

by 김소희

온과 주의 공모전은 마감했다. 열심히 써내려간 글을 제출할 때 온과 주의 노고가 스쳐 지나갔다. 온에게 다 털어놓은 주의 일상에 평화가 찾아온 듯 했다. 하지만 다시 주는 학교에 마스크를 끼고 오고, 결석을 하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 편이 되어 줄게.' 온의 문자에 주는 바로 온을 찾았다.


주의 아버지가 늦게 들어와서 주 혼자 차려 먹은 저녁밥이 화근이었다. 할머니는 애비 주려고 만든 갈비찜에 먼저 손댔다고 주에게 손찌검을 했다. 화가 난 주가 할머니와 싸우던 중 아버지가 퇴근하셨고 아버지는 주의 뺨을 때렸다.

"나 가출할거야, 너는?"

온은 주를 따라 가출하지는 않았지만 주는 혼자서라도 집 밖을 나섰다. 첫 시도였다. 그만큼 허술했다. 주의 아버지는 하루만에 주의 위치를 알아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주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누워만 있었다.


주의 가출로 할머니는 조금 조심스러워졌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주를 향한 욕설은 끊이지 않았다. 저 육씨럴 것, 갈 데도 없으면서 어딜 가. 저년 찾는다고 애비가 고생한 거 생각하면 어휴... 찢어 죽일 수도 없고. 주는 그래도 한동안 맞지는 않을 것 같다고 담담하게 기뻐했다. 주의 볼에 여전히 남아있는 멍 자국은 날 슬프게 했다.

“주, 우리 바다 보러 갈래?”

모래사장에 발을 딛자 운동화에 모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털어봤자 또 들어올 모래라 신경 쓰지 않기로 했지만 계속 발을 불편하게 했다. 흐린 하늘, 한껏 서늘해진 바람. 모래바람인지 물안개인지 희뿌연 하늘이 답답하긴 커녕 마음이 뻥 뚫렸다. 공기보다 더 큰 건 바다였다. 바다 덕분에 온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주에게 바다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숨 막히는 주의 가정환경보다 더 커져서 시원한 광경이 되고 싶다고 온은 생각했다.

“난 태어나면 안 됐나봐. 그랬으면 할머니가 날 싫어하지도, 무시 받지도 않았을 텐데. 난 왜 태어난 걸까.”

주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의 존재는 틀린 게 아니야. 난 네가 너라서 고마워.”

주가 살짝 웃었다.

“여기서 살고 싶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집에서 살고 싶어.”

“주, 내가 바다는 아니어도 호수만은 하지?”

주는 온의 말에 담긴 의미를 찾는 듯 했다.

“하지만 온, 호수도, 바다도 한계는 있어. 난 아마 우주로 가야할 거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받은 전화는 놀랍게도 주의 아버지였다. 지난 밤, 주는 나와 갔던 그 해변에 홀로 걸어 들어갔고 가슴께까지 들어간 주를 다행히 지나가던 여행객에게 발견되어 머리끝까지 들어가기 전 건져내졌다고 한다. 주는 죽게 놔두라며 울다 지쳐 응급실에서 잠 들었다고 한다. 주에게로 가는 길 내내 온은 생각했다. 왜 그 바다에 데리고 갔을까. 온이 주에게 죽을 용기가 돼 준 걸까. 주가 미웠다. 주의 바다가 되고 싶다고 한 건 영원한 안식처가 되고 싶다고 한 게 아니었다. 주, 너의 마지막은 우주랬잖아.


주는 할머니와 가정심리센터에 다니고 있다. 주의 할머니는 싫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이웃들 눈을 의식해 억지로 끌고 가신다 했다.

“상담 선생님도 다 거짓 같아. 난 그에게 겨우 사춘기 청소년뿐일 거 아냐.”


드문드문 학교를 나오기는 하지만 주를 잘 볼 수는 없었다. 방학이 시작 됐고, 온은 주의 짐을 챙겨 주에게로 갔다. 주의 집 앞. 주와 할머니, 아버지가 때마침 아파트 입구로 나왔다. 며칠 동안 못 본 사이 주의 얼굴은 더 지친 듯 했다. 아버지가 차 문을 열고, 할머니가 차 문 앞에서 기다릴 동안, 주가 움직였다. 경적 소리가 들리고 온은 작은 소행성이 뿜어내는 적색편이를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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