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꿈이 뭐라고. 죽으면 죽는 거지. 어차피 안 죽는 사람은 없는데.’
월영교가 무너질 정도로 소리 지르고 싶었다. 들리게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지른 그 외침에 물결이 일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왜 내가 죽는 꿈을 보여주는 거지?'
'도대체 뭘 깨달으란 건데?'
'난 왜 죽는 거지? 그럼 지금 난 왜 살아 있는 거지?'
'살아 있다는 건 뭐고, 죽는다는 건 뭔데. 난 언제까지 사는 거지?'
'왜 내가 남들보다 일찍 죽는 거지? 내 수명은 원래 얼만큼이었지?‘
이 씨. 난 아직 살고 싶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게 많고, 설령 하루만 남았더라도 그 하루로 세상에 뭔가 하나쯤은 남기고 싶었다. 그래, 지금 이 모습은 내가 살고 싶은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진 않았다.
내가 떠나면 슬퍼할 사람들,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한 사람들, 나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사람들. 내가 죽고 나면, 제대로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갔다며 안타까워할 사람들.
그리고, 나를 온전히 알지도 못하면서 '죽은 그 사람'으로 나를 다 안 것처럼 말해버릴 사람들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자존심, 게으름, 욕심, 허영, 열등감, 오만함. 나는 그걸로 나를 감싸고 살았다. 연약한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죽여 가며 살아왔다. 시간을 죽이고, 꿈을 죽이고, 재능을 죽이고, 노력을 죽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죽였다. 이제는, 다른 것들을 죽이다 못해 나 자신까지 죽이려는 건가 보다. 더 이상 죽일 것이 없어서, 이젠 내 본체가 죽을 차례인가.
‘그러면 어쩌라고. 이제 와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러갔고, 내가 하려던 일들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무도 진심으로 도와주지 않았잖아. 나도 외로웠는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오롯이 내 잘못만은 아니잖아. 어쩌면 나도 피해자잖아.
괜히 화가 났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월영교고 뭐고, 지금 안동에 있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났다. 걷다가 서울행 기차 시간을 검색했다. 운이 좋으면 마지막 열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련도 없었다.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문제는 택시였다. 잡을 수 있을까. 생각할 틈도 없이 발걸음이 거의 뛰듯 바빠졌다. 처음 택시에서 내린 곳 근처까지 숨 가쁘게 도착했다.
역시, 이미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 차례가 올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때였다. 멀리서 어떤 차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택시였다. 하지만 불이 꺼져 있었다. '손님 있는 택시겠지…'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차가 내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창문이 내려졌다.
“손님, 아까 이거 두고 내리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