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타난 익숙한 얼굴. 내 카메라 가방을 들고 있는 이는 아까 그, 과묵한 택시 기사님이었다.
“와, 어... 맞아요. 근데 어떻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몇 개의 문장이 겹쳐져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기적처럼 기사님을 다시 만나게 됐네요. 맞아요, 제가 바보같이 택시에 가방을 두고 내렸네요. 근데 어떻게 저랑 다시 마주치신 거죠?’
그 모든 말을 한꺼번에 하려다 보니 아무 말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카메라 가방을 내게 건네며 조용히 웃어 보이셨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내린 뒤, 남겨진 가방을 본 기사님은 내렸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 여태 나를 기다린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은 넘었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 기사님을 나는 급히 붙잡았다. 사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사님은 손사래를 치며 그저 웃었다.
“이거 비싼 거고요. 안에 중요한 사진도 많아요. 제가 꼭 사례해야 해요.”
그래도 "괜찮다"고만했다. 그때 주머니에 있던 종이가 떠올랐다. 나는 급히 그것을 꺼내 기사님에게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내일, 여기 좀 데려다주세요. 그리고 제가 아침 식사라도 대접할게요. 영업 못 하신 것도 있으니, 그거라도 보상하게 해 주세요.”
내 입에서 '내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이미 마음속에선 서울로 돌아가는 막차가 멀리 떠나가고 있었다. 카메라를 잃어버려 서울로 돌아가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되찾고 나니 안동에 더 머무는 게 당연해졌다. 반강제로 기사님의 휴대전화 번호도 받았다. 아직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하자, 기사님은 한 군데를 추천해 주었다.
다행히, 그곳은 기사님 댁과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몇 번을 신신당부한 끝에 기사님과 헤어졌다. 다시 어깨에 걸친 가방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이번엔, 손으로 꼭 붙잡았다.
숙소에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긴 하루였다. 세면을 하고 낯선 방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다 옆으로 돌아 눕기를 몇 번.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오늘 있었던 일들 때문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그 감정이 아직도 마음속에서 상기된 채로 머물고 있었다. 카메라를 켰다. 내가 찍어둔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보았다. 좋았던 시간들. 추억이라 불러도 좋을 순간들. 사진 속 색감이 너무 선명해서 방금 전 일처럼 느껴졌다. 뜻밖의 선의를 베풀어준 기사님 덕분에, 안동에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우연히 닿은 도시. 우여곡절 끝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안동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 났다.
*
기사님과 아침식사를 위해 간 곳은 한 해장국집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모르는 동네에서 맛집을 찾고 싶다면 기사님들이 가는 식당에 가보라고.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감칠맛 나는 해장국에 감탄하며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들, 내가 꾼 꿈 이야기, 허 노인을 만나 안동에 오게 된 이야기까지. 기사님에게는, 왠지 모르게 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다 가방에서 허 노인에게 받은 명함을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어, 여기?”
기사님이 명함을 보고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