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박수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극이 끝이 났다. 배우들이 관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 일제히 나에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긴장이 풀리자 허탈하고도 후련한 감정에 휩싸였다. 등에 담이 온 것 같았다. 그만큼 굳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간 듯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들었던 연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란 말, 그때는 참 따분했는데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탈을 쓰고 있던 그 시간동안, 나는 마치 내 인생 전부가 무대 위에 펼쳐졌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들의 배역에 내 모습이 겹쳐졌고, 탈을 쓴 내 배역 안에는 또 다른 인생이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안도감을 느꼈다. 탈을 쓰고 내 부끄러움이 가려져서가 아니었다. 내가 내 역할을 알고 해냈다는 데서 오는 감정이었다. 죽음은 그저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 자신의 배역을 다하고 조용히 탈을 벗는 일이었다.
배우들이 무대와 소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연출은 내게 다가왔다. 나는 아주 살짝 그를 흘겨보았다. "제법인데?" 그는 그런 표정으로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장난스럽게 꽉 쥐었다 놨다. 그리고 함께 웃었다.
“좀 있다가 배우들이랑 막걸리 해요. 시간되시죠?”
연출의 제안에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수락했다. 그리고 뒷정리도 함께 도왔다.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다. 거리 두지 않았다. 탈을 쓴 이후부터 나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같은 숨결, 같은 무리. 같은 세계. 그들의 삶이 있는 어디나 무대 같았다. 삶이 연극이었다.
“죽었다 살아나신 아무개씨!”
배우들이 장난스럽게 외쳤다. 나는 민망해서 웃었고, 그 웃음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막걸리를 곁들여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주일이 지났다. 어떻게 흘러간 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시간이 흘러 다시 월요일이었다. 청량리행 기차의 출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선반 위에 올렸다가 다시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지퍼를 열고 조심스레 탈을 꺼냈다. 살아 있는 듯, 죽은 듯 기묘한 표정의 탈. 그 순간, 청량리역에서 만났던 허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나에게 그곳에 가보라고 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는 이제 '살 방법'이라는 것을 찾은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잊어버리게 되더라도 이 탈을 꺼내면 다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도 있었다. 그 노인은 어떻게 내 마음속을 알았을까. 그리고 극단 사람들조차 누구인지 모른다는 그 노인은 대체 누구였을까. 하지만 나는 연출에게 그에 대해 묻지 않았다.
딸깍, 딸깍, 딸깍.
기차 바퀴가 선로를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연극의 막을 여는 효과음 같았다. 아니, 2막을 다시 올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