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 미디어의 편견 너머

그렇다면 우리가 본 것은 누구의 이야기였을까?

by morasafon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으면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 배고픔에 지친 아이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초원 등. 미디어가 보여주는 상투적인 이미지들은 54개의 나라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륙을 ‘가난’과 ‘원조’라는 단어로 정의해 버린다.


르완다에 거주하는 미국인, Benicio(가명)와의 대화는 이 지도가 얼마나 낡고 부정확한 것인지를 일깨워주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미디어가 말해주지 않는 아프리카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본다.


누가 아프리카의 가난을 착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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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깨뜨려야 할 프레임은 아프리카를 ‘가난’과 동일시하는 시선이다. Benicio는 이것이 단순한 오해를 넘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착취(Exploitation)’에 가깝다고 말했다.


자선 단체들은 더 많은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아프리카의 가장 비참한 모습만을 골라 보여줍니다. 물론 이곳에도 가난은 존재하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미국에도, 한국에도, 세상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유독 아프리카만이 가난이라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Kigali)의 스카이라인은 매일같이 높아지고, 케냐의 나이로비(Nairobi)에서는 활기찬 중산층이 새로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는 이러한 역동적인 변화 대신, 여전히 파리만 끓는 아이의 얼굴을 비춘다. 이 동정의 프레임은 대륙의 성장 가능성을 가리고, 아프리카를 영원히 수동적인 존재로 남게 하려는 서구 중심적 시선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국경선, 지워지지 않는 상처


아프리카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두 번째 열쇠는 바로 식민주의의 유산이다. 많은 이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아프리카 전체의 역사로 오해하지만, Benicio는 그것이 남아공의 특수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대륙 전체에 더 깊고 복잡하게 스며든 상처는 따로 있었다.


오랜 식민 지배는 많은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에 ‘유럽인은 우월하다’는 슬픈 정신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 상처는 세대를 거치며 여전히 사회 곳곳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죠.”


물리적인 유산은 더욱 명백하다. 19세기말,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의 오랜 부족 공동체나 문화적 경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서 자로 잰 듯 국경선을 그어버렸다. 이러한 직선의 국경선은 같은 부족을 둘로 나누고,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부족을 한 나라 안에 억지로 묶어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분쟁과 내전의 씨앗은 바로 그때 뿌려진 것이다. 아프리카의 현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도 위 직선 국경 너머에 숨겨진 식민주의의 깊은 상처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2,000개의 언어, 하나의 ‘아프리카인’은 없다


우리는 ‘아프리카인’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사용하지만, 그 단어 안에는 세상의 어떤 대륙보다 더 큰 다양성이 포함돼있다. 54개국, 2,000개가 넘는 언어가 공존하는 아프리카의 소통 방식은 그들의 복잡한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각 국가들은 어느 유럽 국가의 지배를 받았는지에 따라 공용어가 결정되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이지리아와 케냐는 영어를(Anglophone),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어를(Francophone),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앙골라와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어(Lusophone)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물론 사람들은 이 공용어와 함께 각자의 부족 고유 언어를 사용한다. Benicio가 사는 르완다는 과거 프랑스어권이었지만, 지금은 국제 정세에 발맞춰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언어의 이처럼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


문화적 다양성은 더욱 크다. Benicio는 케냐에 수 세대째 살아온 인도계 아프리카인들을 예로 들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인도인이 아닌 아프리카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의 뿌리는 아프리카에 깊이 내렸으니까요. 한국인 커뮤니티도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그가 미국을 떠나 르완다에 정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에서 저는 소수자였지만, 이곳에서 저는 다수의 일부입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었다. 그는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모습에서 아프리카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편견의 이미지를 지우고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미디어에 가려진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베를린 회의 (The Berlin Conference of 1884–1885)

독일의 비스마르크 주재로 유럽의 주요 14개국이 참석했으나 아프리카 측 대표는 단 한 명도 초청되지 않았다. 이 회의를 통해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 대륙을 기하학적인 직선으로 나누었으며,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의 지리, 민족, 부족 분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설정된 인위적인 국경선은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 대륙의 분쟁과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