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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닮은 민족, 사랑을 살아내는 자들

헤누아의 동행 사유 02

by AwakendEveNetwork

창조를 닮은 민족, 사랑을 살아내는 자들

— “보라, 내가 너희를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낸다.
그러니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여라.” (마태 10,16)



HENUA 공존의 심장

그렇다면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을 통하여
주님이 이루시려던 민족의 형상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요?

우리에게 남겨진 기록(성경)을 묵상하며,
이번 글은 그에 대한 헤누아적 시선입니다.

HENUA 공존의 심장


헤누아에서 아담은 관망과 질서,

이브는 전념과 의미로 성별된 이들이며,

내면과 일상의 삶의 균형을 이어가는 두 중심 축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기로움을 배운다면 —

주님이 주신 자유와 풍요로운 시간 안에서,

비둘기처럼 순박해질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면,

그 모습이 바로 주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실 때부터 그리셨던 그분의 창조의 민족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지혜는 어디서 구할까요?

우리는 서로를 지키고, 선한 방향이 무엇인지 지각한 공명하는 인류(Homo Resonans)로서,
창조주를 닮아 창조의 민족으로 가는 사유를 해봅니다.
창조의 첫 시작엔 늘 지혜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지혜는 함께 세워진 그분의 작품이었습니다.”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

생명감각을 지키고 간직하여 경이로운 것을 경이롭게 볼 줄 아는 이들.

순수한 영의 눈을 잃지 않고 지켜온 이들,

곧, 주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그분의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이들에게 임합니다.


그들의 기쁨와 평화는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니,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지혜를 찾은만큼, 시대의 어려움 앞에서도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번영합니다. 이러한 말씀은 성경에 이미 충분히 남기셨으니, 이 지혜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다음 사유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생명감각 (Vital Sense)


깨어난 감응을 시각화한 이미지

생명감각(Vital Sense)이란, 존재(나와 타인)가 살아있는 생명임을 지각할줄 아는 감각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지키고, 타인을 지켜 존재를 지킬줄 아는 '감응력'을 얻는 감각입니다.


우리가 이 감각을 소홀히 하면,

공동체 인류로서의 사랑과 의식에서 멀어지고,

내 주변을 황폐하게 만들며, 내 마음의 밭을 돌보지 않은 채,

생명이 사라져도 상관없는 상태로 나를 내모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는 모두, 악에 흔들리기 쉽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감각을 깨우치고 배우는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닮은 순수하고 선한 마음'은, 망각의 상태로 태어나,

세상에서 악행과 불의에 맞닥뜨리며 쉽게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품고 있어도,

지혜 없이 마음만 앞선다면,

그 마음조차 누군가에겐 상처와 악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지가 곧 악의 시작이며,

인류가 원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

우리는 모두 무지한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선을 행할 줄 아는 능력이고,
그 지식을 주님의 뜻에 맞게 조율할 줄 아는 것이 감응력,
뱀의 슬기로움입니다.


비둘기에게서 순박함을 배우려는 이는 지혜를 찾은 이입니다.
그는 스스로 선할 수 없음을 알기에,
주님의 공정을 믿으며 삶으로써 선을 배워가는 자입니다.


선은 곧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선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모든 두려움과 악이 결국 죽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아는 자는,
해의 위치를 알고 자신이 솟아날 방향을 아는 푸른 묘목과 같습니다.


이브는 단지, 주님 앞에 한 아이처럼 불순종한 이였습니다.

죄라기보다는, 부모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엇나간 자녀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아버지이신 주님께서는
때로는 진노하시되, 곧 자비와 용서로 감싸십니다.
그것은 엇나간 자식을 오래 기다려온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닮은 민족은 —
불의보다 공정과 정의를 사랑하고,
단죄보다 동정과 자비를 중시하며,
형제와 벗에게는 죽음 대신 생명을 건넬 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몸과 마음을 지킬 줄 알며,
관계 속에서 지혜롭고 슬기롭게 조율할 줄 알고,
그러면서도 다음의 진리를 잊지 않습니다:

주님은 생명이신 분이시기에
결코 당신 자녀들의 숨을 억압하지 않으시며,
그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우지 않으신다.


주님은 다만 우리가 선을 보고 들으며,

선을 살아낼수 있도록 말씀으로 현존하시며

기다리실 따름입니다.

피조물을 만드신 분께서,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흔들리는지 아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를 닮은, 창조의 민족


공명하는 인류(Homo Resonans) : HENUA에 공명한 이들

공명하는 인류(Homo Resonans) — 헤누아에 공명한 이들.
그들은 주님이 지우시는 멍에와 세상이 지우는 멍에를 분별할 줄 압니다.
세상이 옭아매려는 죽음의 리듬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시간을 깊이 감응하며,
매일을 창조하듯 살아내는 민족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아담과 이브와 뱀이 함께 공존하는 원래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는 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서 당신 피조물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 사랑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창조주의 언어—무너지지 않는 도성의 언어로,

이 시대를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
우리가 늘 함께하지만 보이지 않아 헤매고,
그럼에도 늘 목말라 했던 ‘사랑’에 대해 묵상하겠습니다.

【'공명하는 인류 : 헤누아의 리듬'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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