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떠먹이는 글 한 스푼 (2)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인간군상을 마주하게 된다. 학교가 일종의 사회 축약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교직원이나 학생을 모두 포함하여 학교에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결국에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학생은 그 모든 이들 중에서도 특히 미성숙한 존재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모두 미숙하다. 그래서 성인들보다도,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섣불리 단정 지어버리는 경우가 잦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의 경우가 그렇다.
다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실 단순히 타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게 정의되는 개념이다. 겉보기에 우리는 모두 판이하게 다르다. 그래서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러니 다름은 외형의 차이만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피상적 다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겉모습만으로 구분되는 다름은 피상적 다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반대, 본질적 다름은 무엇일까?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본질적 다름이란, 내적인 다름을 말하는 것이다. 대상의 성격, 가치관, 관심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개개인 간의 근본적인 다름은 다 이곳에서 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필연적인 유전적 차이보다도,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유일성, 또 그것과 자연적으로 동반되는 사고의 차이가 모여 각 개인을 진정으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되돌아와서, 학생들은 다름이라는 개념을 상당히 낯설어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거니와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 할 학교라는 공간이 서로와의 경쟁을 위한 곳으로만 소모되는 탓이다. 그러다 보니 다름을 틀림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름과 틀림은 그 철자만큼이나 꽤 큰 차이가 난다. 지동설과 같이 보편적이고 타당한 진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했듯 외적과 내적으로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다른 것이다. 그러니 가정에서 자녀에게 다름에 대해 정확히 가르쳐 주면 좋겠지만, 가정이 이상 실현의 투영체가 아님은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이다.
학생들이 다름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자신이 가진 정보에 의존하기보다는 다른 이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자신의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다. 학교에서, 특히 학급 회의와 같은 학교생활의 개선 방안을 모의하는 곳에서는, 전체의 의견에 이견을 제시하면 은근하게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통제된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게 된다. 때문에 다름은 참 다양한 상황에서 갖가지 이유로 무시된다.
상술했듯이 학교는 사회의 축약판이다. 학생들은 언젠가 성인이 되어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특별한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여전히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채로 사회에 나가게 될 것이다. 사회가 획일화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가 도전하지 않는 사회가 된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실패도 다름이 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