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透析한 지 약 6년째가 된다. 退任한 지는 3년 3개월 째이다.
때로 투석이 지겹고 이것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하면 끔직하다. 일주일에 4시간씩 3일을 하면 생의 반은 투석으로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지겨움을 탈피하는 방법은 투석 아니하는 날 바깥 바람을 쇠는 일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밖을 좋아하는 驛馬煞이 있는 데 시골에서 일주일 내내 쳐박혀 있는 자체가 나로서는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바깥 바람 쇠려고 작정하고 바닷가 쪽으로 나간다.
지지난 주일은 내가 좋아하는 邊山半島 곰소항 (熊沼港) 쪽으로 갔다. 운전하는 아내는 모르겠지만 난 이미 흥분했다.
먼저 부안 高麗靑瓷 休憩所를 들려 내가 좋아하는 USB 도 購入하여 輕快했다. 기분은 최고조였다.
곰소항에 도착하여 어물 시장을 둘러보며 갯가의 비린내를 맡았다. 난 갯가 출신도 아닌데 비린내가 그리 좋다. 가는 길에 보이는 水廓도 아름답다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까 돌아보았다. 난 어떤 음식도 잘 먹지만 아내는 의외로 가리는 것이 많아 결정권을 그에게 주었다. 먼저 자동차가 많이 駐車해 있는 곳을 찾으니 사람들이 빼곡하다. 일단은 잘들어 왔다는 安堵感이(堵: 담 도) 있었다. 근데 난 불편했다. 椅子가 없어 맨 땅에 앉으니 발을 쭉뻗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已往之 들어온 집 나갈 수도 없었다. 아내는 메뉴판을 쭉 훑어본 후 풀치 조림을 시켰다. (풀치 : 갈치 새끼) 하나 남김없이 먹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나와서 里程標를 보니 지난번에 갔던 코스가 눈에 鮮然히 들어온다. 먼저 해수욕장으로 앙증맞은 牟港 (牟: 소 우는 소리 모)을 찾았다. 철 지난 바닷가로 사람은 없지만 전에 와서 느꼈던 아득함은 있었다. 항구애서 오른 쪽에 위치한 팬션은 색깔을 달리해서 또 새로웠다.
이제 弓港을 찾았다. 내리지는 않고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의 撮影地(撮: 손으로 모을 촬)라 생각하며 지나쳤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졸음이 掩襲한다. 점심 식사 후 한 숨 주무시는 김광식 목사님 생각이 났다.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采石江으로 갔다
바닷가 호텔 커피 숍에 들려 아포카토(affogato)를 시키니 12,000원. 지금 까지 이 커피를 마신 집 중 최고였다. 찻집에서 아네와 오순도순 얘기도 하고 바닷가 풍경도 찍고 철썩거리는 波濤도 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올 때 약속이 있어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코에 바닷바람을 넣으니 더넘은 없어졌다.
이번 주도 바다다. 원산도에 바이더 오로 갈 작정으로 나섰다. 먼저는 점심을 해결해야겠기에 일전에 들린 적이 있는 동대동 설악 추어탕 집으로 갔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이 엄청 많다. 연신 사람이들이 들어온다 밥은 쬐금 먹고 국물은 한 점 남김 없이 비우니 정말 배가 빵빵했다.
註 水廓 강이나 바닷가에 있는 촌락 더넘 : 넘겨받은 걱정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