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널리 알려진 속설 중 하나는
잘 사는 사람은 보수 성향을,
못 사는 사람은 진보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노도강',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를 한 데 묶어 가리키는 말이다.
이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인 저개발 지역으로 꼽히며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
'강남 3구',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한 데 묶어 가리키는 말이다.
이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꼽히며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하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강남 3구의 투표함이 열리면서 오세훈 후보가 열세를 뒤집고 막판 대역전에 성공한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속설은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단면만으로 가난한 동네는 진보, 부자 동네는 보수라는 편협하고 이분법적인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렇게 따지면 '강남 좌파'라는 말은 태어나서는 안 될, 태어날 수도 없었던 모순적인 단어일 것이다.
그 논리에 충실해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가난하다는 이유로 진보 성향을 가졌던 사람이 로또에 당첨됐다고 치자.
그 사람은 수십 억 자산가가 되었으니 그날부로 보수 성향으로 바뀌는가?
혹은, 부자라는 이유로 보수 성향을 가졌던 사람이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잃었다고 치자.
그 사람은 알거지가 되었으니 그날부로 진보 성향으로 바뀌는가?
고작 통장 잔고에 찍힌 숫자 몇 개로 휙휙 바뀔 정치적 스탠스라면 그건 이념이라고 부를 수 없다.
미국의 뉴욕과 캘리포니아는 아주 오랜 기간 미국 민주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뉴욕과 캘리포니아는 각각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지역이며 미국 문화, 경제의 양대산맥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2024년 명목 GDP는 4조 1,000억 달러로, 캘리포니아가 단일 국가로 독립할 시 무려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실리콘 밸리 등지는 모두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서부 해안에 인접한 여러 부촌 카운티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부촌인 '베버리 힐스'마저도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
다음은 뉴욕 주가 아닌 뉴욕 시에 한정해서 살펴보자.
뉴욕은 런던, 도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로 꼽힐 만큼 경제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뉴욕 시가 단독으로 뽑아내는 GDP는 2023년 기준 1조 2,860 달러이다.
도시 하나가 대한민국 전체 GDP와 맞먹을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부자 동네인 뉴욕 시는 캘리포니아를 능가하는 민주당 초강세 지역이다.
(미국 민주당이 지지하는 '큰 정부'는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에 가깝지만, 한국의 진보 진영은 때로 이보다 더 강한 국가 개입이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기도 한다. 이처럼 두 '진보'는 결이 다르지만,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긍정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지금까지 제시한 사례들은 우리가 흔히 가지는 스테레오타입인
"돈 없는 사람은 진보, 돈 많은 사람은 보수"라는 관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보수 이념은 부자만을 위하고, 진보 이념은 서민만을 위하는 게 아니다.
정치 성향은 주로 개인의 가치관에서 발전하는 사상이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는 '자유'와 '안정'을, 진보주의는 '평등'과 '변화'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안정'은 점진적인 변화를, '변화'는 급진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는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관점 차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관점 차이는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자유와 평등 이외에,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이다.
보수 진영은 고전학파에서부터 신고전학파,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으로 '작은 정부'를 추구해왔다.
작은 정부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사회 방위 (국방, 치안)
2. 법질서 확립 (법치주의, 정의 집행)
3. 공공사업과 공공기관 설립 (공공재 제공)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역할을 아주 소극적으로 제한하며 '자유시장경제'와 '시장의 자정 작용'을 믿는다.
보수 진영의 이런 스탠스는 애덤 스미스가 그의 대표 저서 <국부론>에서 말했던 "시장을 내버려두라"는 유명한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의 개입이 시장의 효율성을 해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진보주의자들은 '큰 정부'를 추구한다.
이는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시장 실패'를 언급하며 나타난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영향이 크다.
진보 진영은 주로 케인스의 승수 효과, 유효 수요 이론 등을 믿는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대공황을 종식시킨 건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적 뉴딜 정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제1의 재정 공급자로서 큰 돈을 민간과 시장에 투입하면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장의 자정 기능을 보완하기에, 결과적으로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이 경제 성장 촉진으로 이어진다는 논리 구조를 띠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리콘밸리와 맨해튼의 부유한 상류층이 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자신의 경제적 '자유'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가치관에 따라,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 복지를 확대하고 교육에 투자하는 '큰 정부'의 역할에 기꺼이 동의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난한 동네에 사는 저소득층이 보수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복지'와 '부의 재분배'보다는 국가가 잘 살아야 국민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으며 '경제적 자유'와 '국부(國富)'를 추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큰 정부를 지지하느냐, 작은 정부를 지지하느냐 사이에는 그 어떤 위계 질서도 없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의 재정 지출이 '공짜 점심'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정부의 대규모 재정 정책에 투입되는 재원이 흙 파서 발견한 공짜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와 민생에 쓰이는 돈 역시 국민의 세금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물가 상승이나 재정 건전성 악화 역시 국민들이 져야 할 부담이다.
추경(국채 발행)은 발행하는 순간부터 이자가 붙기 시작하는 채권이며, 이는 국가의 재원과 재정이 무한하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물론 작은 정부를 추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의 양극화 심화나, 시장 실패의 위험성 역시 우리가 함께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는 관점 차이는 세금과 기업에서도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진보주의자들은 주로 부자 증세(상속세 증세, 종부세 증세), 기업 규제(법인세 증세) 등을 주장한다.
이러한 부의 재분배를 통해 경제적 양극화 문제 해소와 부의 독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주로 부자 감세, 기업 규제 완화 혹은 철폐를 주장한다.
이러한 정책이 고용 창출, 세수 증대, 낙수 효과, 건전한 경쟁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부와 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의 차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민영화' 논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은 시장을 믿지 않으며, '민영화'를 곧 '사유화'로 인식한다.
정부의 소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은 정부를 믿지 않으며, '국영화'를 곧 '경쟁 포기'로 인식한다.
여러분은 어떤 정부를 기대하고,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가?
경제 정책은 국가의 백년 대계를 책임지는 가장 큰 줄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는 단순히 어떤 정당을 지지하고 어떤 인물에 표를 던지는가를 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정당은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찾아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는 건 어떨까?
보편적 복지가 정말로 민생을 구원하는지,
부자 감세, 규제 철폐가 정말로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수구 세력의 정책인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재정 정책, 국가 부채 비율 통계를 찾아보고 정부의 적절한 역할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해보는 건 어떨까?
이 글이 던진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정치 이념은 통장 잔고에 적힌 0의 개수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회를 꿈꾸고 어떤 국가를 꿈꾸는지가 결정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