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안서 작성 경험이 남긴 것들

크림만의 에셋

by 더크림유니언

침묵 깨기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기분입니다. 약 한 달간,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제안서 작업에 온전히 매달렸고 지금은 작업이 끝났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꽤나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한때는 성과가 좋았지만, 이제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서비스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을 제안해야 했거든요.


제안서 작성이 처음은 아니었기에 작업 자체에 대해서 염려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신경쓰인 부분은 '사람'과 '방식'이었습니다. 함께하는 동료들과는 처음 손발을 맞춰봤고, 회사 내부에서도 제안 TF를 운영하는 규칙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였죠. 그래서인지, 저는 초반부터 일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작업 중간중간에 시행착오가 있었고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그 순간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복기하며 앞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점들에 대해 회고하게 되었습니다.

nihal-demirci-hMuMqX8ovyc-unsplash.jpg


작업의 순간

제출까지 3주가 넘는 시간. 달력 위 숫자는 넉넉해 보였지만, 막상 풀어야 할 숙제의 무게를 생각하니 조급해졌습니다. 작업을 착수 하자마자 곧바로 RFP와 고객사 미팅에서 얻은 정보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인 요구사항이나 프로젝트의 목표 등 작업을 진행할 때 이해해야 할 내용을 정리했고 내부 킥오프 미팅에서 공유했습니다. 사실 TF에서 제가 가장 연차가 낮았기에 회의를 주도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역할이 조금은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막상 진행해보니, 초기에 모두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모으고 집중할 부분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TF는 시작부터 한번 해보자는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업 초기에 한 가지 실수가 있었는데, TF 내 각자의 역할(R&R)과 리더를 명확히 정하지 않았던 작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열정은 넘쳤지만 각자가 어떤 작업을 어떤 범위까지 담당해야할지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안서에 포함할 내용 구성에 대해 협의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고 다음 작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답답한 정적이 흘렀죠. 결국 논리 구조를 설계하는 단계에서 모든 것을 멈추고, 역할을 분배하기 위한 추가적인 소통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좋은 팀워크는 그저 모여있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명확한 약속과 규칙 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작업이 병목되지 않기 위해선 다음 부턴 사전에 TF 리더가 키맨이 되어서 각 역할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각 파트가 담당할 작업을 정리한 후엔 멈춰 있던 작업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제안서의 구조가 될 전략을 구체화하던 순간들입니다. 기획 파트에서는 회의실에 모여 마치 토론을 하듯 의견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진행했습니다. 서로 여러 관점에서 검토하고 구상하되 합리적인 근거라는 기준 아래 여러 관점을 검토하다 보니, 가장 빛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IMG_4965.jpg 퀵하게 미팅할 때 애용했던 크림 1층 라운지
IMG_4966.jpg 토론식 소통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자리


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실제로 실행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구상한 전략 중 일부는 과거 다른 프로젝트에서 이미 시도해봤던 것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히스토리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하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마치 보물 지도를 발견했지만, 그게 진짜인지 증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었죠. 결국 매력적인 논리의 흐름을 일부 포기하거나, 표현을 다르게 각색해야 하는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한편 모든 전략과 논리 흐름이 슬라이드로 표현된 후에 전략이 서비스 화면에 반영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정의되지 않은 작업 방식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획 파트가 디자인을 요청하기 위해 어떤 내용까지 정리해야 하는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화면은 와이어프레임과 유저 시나리오를 설계해서 디자인을 진행했지만, 일부 화면에 대해서는 레퍼런스를 기준으로 전략을 구현하다 보니 본래의 의도와 다른 디자인 시안이 작업되었습니다. 제안서 제출일이 하루 남짓 남은 상황인지라 지체하지 않고 기획 및 디자인 파트가 빠르게 미팅으로 수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정리한 후 밤 늦게까지 작업하여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simon-timchenko-2AAqu_CA-bg-unsplash.jpg


아웃 오브 더 트랙

다행히 설계한 전략이 잘 드러나도록 정리한 제안서는 늦지 않게 제출되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지금, 저는 이번 TF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무엇이 '크림'만의 자산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봤습니다. 그 모든 경험의 중심에는 '협업'이라는 키워드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힌트를 얻어서 일하는 방식에 대한 자산을 내재화 하려 합니다.


Keep (계속 지켜나가야 할 것)

초기 분석에 대한 공통의 이해

합리적인 근거 기반 토론식 의사결정

밀접한 직접 소통


Develop (더 발전시켜야 할 것)

명확한 R&R 정리

프로젝트 히스토리 정리

작업 방식 협의



기획자로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얻은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소통 방식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이 깨졌습니다. 저는 그동안 슬랙이나 노션 같은 온라인 소통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료를 다시 찾아보거나 몇몇 포인트로 되돌아가는데 유용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TF에서는 얼굴을 마주 보고 밀도 높게 소통하는, 어찌 보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소통 방식은 제가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빛과 표정, 작은 제스처에 얼마나 많은 정보와 의도가 담겨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빠른 의사결정을 이끌어내는지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크림의 문화와 만나니, 직접 소통 방식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며 퍼포먼스를 개선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일부 프레임이나 사고 방식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획의 최초 근거는 새로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변화에 대해서 똑같은 접근 방식과 프레임으로 작업하는 것은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게 만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하늘을 똑같은 하늘색(#50bcdf)으로만 표현하는 것 처럼,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세울 수 있는 기획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하늘색이 있듯,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양해야 하니까요.


despina-galani-BG9THqKy_yk-unsplash.jpg


현재 크림은 21년의 적지 않은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앞으로도 끊임 없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험에서 배우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 이후로도 현재를 살아가지만 배우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는 크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크림유니언

UXP그룹 한인창

keyword
작가의 이전글HR,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