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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수첩

by 서울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는 순간, 남자는 옆자리 여자에게 눈길이 갔다.
고개를 숙인 채 창가 쪽에 앉아 있었지만, 자세가 단정했다.


그녀는 그가 마음속으로 그려오던 이상형에 가까웠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희고 깨끗한 피부, 쌍꺼풀은 없지만 눈매가 또렷했다.
고개를 들 때마다 반사되는 빛이 얼굴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렀다.


모처럼 휴가를 내고 고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기차의 진동이 느릿하게 이어졌고, 그는 생각했다.
‘뜻밖의 동행이라도 생기면 나쁘지 않겠지.’


남자는 시골 출신이었다.
좁은 시골 동네에서는 ‘서울대 간 사람’으로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 평범한 얼굴, 내세울 것이라곤 학벌 하나 뿐이었다.

그는 무심한 척 가방을 열었다.
안쪽에 넣어둔 오래된 가죽 수첩,
표지엔 여전히 서울대 마크가 선명했다.
그는 그것을 꺼내 들었다.

기차가 덜컹거리자, 그녀가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그녀의 시선이 수첩 위를 스쳤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펜을 돌리며 숫자 몇 개를 적었다.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였다.
그저 누군가 자신을 ‘서울대 나온 남자’로 봐주길 바랐다.

창에 비친 그의 얼굴을 그녀가 힐끗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잠시의 정적, 기차의 진동, 그리고 두 사람의 숨소리가 묘하게 겹쳤다.

‘그래, 이건 나쁘지 않은 시작이야.’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할 즈음, 그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 시간 되시면 커피라도 한잔 하실래요?”

그녀는 대답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남자는 직감했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그리고 그녀의 끄덕임으로 조금은 으쓱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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