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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Dr.Transfer

by 짧아진 텔로미어

6: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확인한다. 그 얼굴은 좌우가 반전된 상이다.

우리가 평생 익숙게 느껴온 자신의 얼굴이 실제와는 좀 다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타인의 눈에 비친, 반전되지 않은 내 얼굴은 내가 보는 내 얼굴과는 다소 다르다.

뇌는 익숙한 것을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익숙해하고 남이 보는 내 얼굴엔 낯설음을 느끼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시선 사이에서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나’는 묘하게 어긋난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조차 낯선 타인일 수 있고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왜곡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얼굴은 신분증보다 더 강력한 증거라 그것이 무너질 때,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간혹 응급실에 신기할 만큼 유사한 증상의 환자들이 연달아 오기도 하는데 오늘은 얼굴 인식과 관련된

희귀 질환 환자들이 연이어 내원하였다.

한 명은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환자다. 교통사고로 인한 머리 손상 이후 발병했으며 최근 악화되어

주위 사람들의 얼굴뿐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낯설어했다.

목소리와 체형 그리고 옷차림은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의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하는 상황 견디지

못하여 내원하였다. 당혹감으로 가득 찬 표정은 진심이었다.


응급실 3번 침상에 누운 환자는 멀쩡한 눈으로 사람을 쳐다보면서도 그 얼굴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 감정도, 기억도 남아 있고 하면서 얼굴은 낯설어했다. 심지어 그들의 이름도,

목소리도, 손끝의 촉감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있어도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예뻐하던 아이들에게도 무관심했다.

망각 또는 기억의 결함보다는 감각의 배신에 가까운 상태였다.


어떤 느낌일 궁금했다.

매일 보던 사람이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는 기억나는데 그 얼굴이 누구였는지 알 수 없다면,

감정은 남았지만 대상이 사라진 것 같을 때의 느낌말이다.

이렇게 접하기 어려운 희귀 질환을 놓칠 수는 없다. 오늘 내 몸에 옮겨야 할 병이다. 안면인식장애.

조용히 그의 손을 잡고 내 몸으로 옮겼다.

최근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정치인에게 옮기에 안성맞춤인 질환.

마치 나에게 그에게 옮기라는 사명감을 주기 위해 내원한 환자 같았다.


혼란스러운 응급실 분위기가 잠잠해질 무렵,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보호자와 함께 걸어 들어다.

자신의 아내를 보며 말했다.

"내 아내처럼 생겼지만 저 사람은 다른 사람이에요."

"가짜예요. 누가 대역을 보낸 거라고요"

황당해하던 아내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이 환자는 앞의 환자와는 전혀 다른 증상이다.

카푸그라 증후군 환자. 얼굴은 알아보지만 진짜가 아니라고 믿는 병이다. 얼굴은 아는 사람이 맞는데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다. 대역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가짜가 흉내 내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 환자도 외상으로 생긴 뇌손상 이후 발병하였다.


아쉬웠다. 이 환자가 먼저 왔다면 당연히 이 병을 내 몸에 심었을 텐데 하지만 오늘은 이미

안면인식장애 환자의 병을 심었다.

'하필이면 같은 날 오니'

너무 아쉬 환자 앞에서 머뭇거릴 때 각이 들었다.

'한 번에 두 개의 병을 옮길 수는 없까?'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고 그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이 병 내게 옮겨졌는지는 모른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 정치인에게 전이하는데 집중하는 것뿐이다.


최정훈.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피 그리고 반반한 얼굴덕에 여자들이 오빠부대처럼 따라다니며

연예인 같은 인기몰이 했던 현직 국회의원다.

참신한 정치를 모토로 청렴한 척했지만 뒤로는 4선 이상의 국회의원보다 더 거들먹거리며 수십 건의

비리 의혹에 연루된 쓰레기 정치인, 검찰 출석 요구 묵살, 청문회 회피,

"그 사람,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입만 열면 모르쇠로 일관하며 법망을 피했고, 기억상실은 무책임의 핑곗거리였다.

전이에 성공한다면 그는 진짜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카푸그라 증후군까지 전이가

된다면 얼굴을 알아보더라도 가짜로 생각해 혼란에 빠질 것이다.


접촉은 어렵지 않았다. 정치인의 일정은 늘 공개되어 있었고, 나는 후원행사장에 평범한 지지자처럼

들어갔다. 정장차림에 마스크를 썼고 줄지어 악수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다가갔다.

"존경합니다"

그가 익숙한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잠깐 동안의 악수. 전이는 순식간에 끝났다.

그와 눈을 맞추며 속으로 한 마디를 속삭였다.

"이제 너는 얼굴조차… 모르게 될 거다."


하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사실 두 질환을 동시에 내 몸으로 옮겨 전이를 시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았다.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카푸그라 증후군이 내 몸에 옮겨지 않아 안면인식 장애만 전이되는 경우,

두 번째, 두 가지 질환이 내 몸에 다 옮겨지고 두 개가 그에게 전이되는 최상의 경우

그리고 마지막로 하나만 전이되고 하나가 내 몸에 남아 내가 걸리게 되는 최악의 경우.

사실 마지막 경우의 수 때문에 두 번째 질환을 옮길 때 좀 주저했었다. 최상의 경우를 기대하며 정치인의

상태와 내 상태를 며칠 지켜봐야 했다.

사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다른 경우의 수가 있다는 건 나중에 로 얘기해야겠다.


다음날 최정훈은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복장도 머리도 단정했지만 왠지 미세하게 주저함이 묻어

나오는 걸음걸이였다. 마치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마이크 앞에 서서 그는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누구도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주위를

훑었다. 천천히, 얼굴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입을 열었다.

"제 좌관이 어디 있나요?"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의원님, 바로 옆에 계십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바라봤다. 분명히 눈에 익은 정장을 입고 있고, 건장해 보이는 체형

익숙한 수첩과 똑같은 펜을 들고 있다. 분명 모습은 익숙한데 얼굴이 낯설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람이요?"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좌관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의원님, 오늘 아침에도 같이 일정 검토했습니다. 지금 이 노란 파일, 의원님이 직접…"

그가 말을 끊었다.

"됐어요. 목소리는… 네, 목소리는 맞네요. 근데 얼굴이 달라요. 이 사람이 아니에요."

기자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뜻이시죠"

그는 마이크를 내려다봤다.

"목소리는 알고, 말투도 맞는데… 얼굴이 낯설어요. 이 사람은… 내 보좌관이 아니에요"


회의장은 술렁였고, 보좌관들이 급히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외부에선 ‘건강 이상설’이 돌았다. 언론은 처음엔 치매를 의심했고, 어떤 이들은 정신질환을 의심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이전처럼 사람을 모른 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진짜 르게 된 것이라는 것을.


안면 인식 장애의 전이는 완벽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자기 얼굴조차. 최정훈의 몰락은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2일 후 나는 약간 초조하게 다른 증상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국회에서 기다리던 증상이 그에게 나타났다. 한 의원이 최정훈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같이 상임위 했던…" 최정훈은 손을 뿌리치며 뒷걸음질 쳤다.

"가짜야. 당신은… 당신은 그 사람이 아니야."

"진짜 얼굴을 흉내 내고 있지만 대역이군."


그날 똑같은 말을 자기 부인에게 했다.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니에요. 흉내 내고 있잖아요. 얼굴은 맞는데 가짜라고요.”

그와의 악수가 끝난 순간부터 기다려온 증상이다. 두 질환의 전이는 성공적이었다.

감각적 기억과 감정적 인식은 분리되었고, 현실의 얼굴과 정신의 얼굴은 어긋났다.


다음 날 국회 청문회장. 그는 질의 도중 중간에 말을 멈췄다. 파워포인트 화면에는 몇 해 전 민생탐방을

다녀왔던 사진이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서민들과 손을 맞잡고 있는 그의 모습.

그런데 그는 그 화면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 누굽니까?"

순간 국회장엔 정적이 흘렀다.

"의원님, 그게 바로 의원님입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기자들은 그 장면을 일제히 송출했다.

자기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국회의원, 최정훈 의원, 기억상실증인가, 연기인가?

그의 눈동자엔 점점 두려움이 배어 있었고,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으며, 누군가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의원실은 해체되었고, 그를 만나려는 언론으로 병원 출입문 앞 북새통이었다.

마침내 병원 측은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환자는 복합적 인식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안면인식장애(Prosopagnosia)와 카푸그라 증후군

(Capgras Syndrome)이 공존하며, 얼굴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된 얼굴마저도 ‘가짜’로 인식하는

심인성 왜곡 상태입니다."


이 증상은 단순한 병리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의 소멸’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며 관계를 맺는 일, 감정의 끈을 연결하는 일, 사회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그 모든

연결고리가 그의 뇌 안에서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두 질환 전이 성공. 대상자 현실 검증력 소실, 자아경계 붕괴 및 인격 분리 단계 진입. 정치적 판단 및

인간관계 기능 사실상 종결.'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뉴스에선 그의 과거 발언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변명이 아니었다.

진짜 얼굴을 모르게 된 최 의원은 결국 자기 자신조차도 모르게 되었다.


정치인은 사퇴했고, 모든 권한을 내려놓은 뒤 은둔했다.

언론은 그를 “얼굴 없는 정치인”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그를 향해 “책임을 얼굴로부터 도망친 자”라고

불렀다. 결국 그는 고립되었다. 집 안의 거울조차 외면했고, 과거의 영상과 사진들은 공포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무너뜨린 이들의 얼굴도 잊었다.

기억은 있었지만, 증언은 불가능했다. 그가 누구를 죽음으로 몰았는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전부 얼굴 없는 기록이 되었고, 증언할 수 없는 기억은 의미를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사람들을 는 진심으로 알고 싶어했다.

누가 물어보면 진짜로 알고 있다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것이다.


응급실에 내원했던 두 환자는 갑작스럽게 증상이 호전되어 보호자들의 손을 잡고 퇴원했다.

잠시 고요해진 응급실. 오늘따라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웬지 더 낮설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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