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하곤 했다.
내가 온 세상을 잿빛으로 바꿔버린다고.
그들은 어떤 물감을 얹어도
내 색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짐승의 시야로 살아온 탓이었을까,
아니면 여러 겹의 인간 탈을
겹겹이 쓰고 있었던 걸까.
나의 유채색을 앗아가던 세상은
오히려 더 선명하고,
잔인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때 나는 흑과 백의 경계선을 걷고 있었고,
고개를 돌릴수록 세계는 소란스러웠으며
그림자는 늘 내 반대편에서 자랐다.
내가 그려둔 도화지엔
까마귀 떼들이
울음도 웃음도 아닌 소리로
색을 조금씩 깎아내렸고,
저편의 도화지엔
뭉게구름들이 느린 춤으로
빛을 조금씩 밀어 올렸다.
온전치 못한 몸을 끌고
온전한 그를 향해 빌었다.
제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 분홍빛을 품은 그의 종이 위에
조용히 작은 꽃이 피어났다.
나의 이기적인 붓질로
그의 색을 덧칠했지만,
떠나고 보니
나는 꿀벌이었구나.
향도, 온기도 그대로였다.
나는 여태
색의 아름다움만을
붙잡고 살았으니,
숲의 너비를
오랫동안 잊고 있었으니,
내게서 색이 빠져나간다고
세상을 원망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