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디렉터 & Chief Design Officer
신입 디자이너로 회사에 지원할 때마다,
나는 늘 자기소개서에 한 가지 목표를 적었다.
10년쯤 지나면, 꼭 대학 강단에 서서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실무 중심의 교육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주변에는 그런 길을 걸어간 선배 교수님도 없었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시각디자인이라는 과목이 학문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실무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결심 이후, 내 마음속에는 늘 큰 로드맵이 있었다.
디자이너로 단계별 성장을 이루고,
힘들어도 버티며 경험을 쌓다가,
언젠가 대학 강단에 설 준비를 하는 것.
그러던 중 학벌 조건을 살펴보니,
전임교수가 되려면 석사만으로는 부족하고
박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곧바로 박사 입학 준비를 시작했고,
그동안 쌓은 실무 경험과 포트폴리오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박사 과정 코스웍 1년 차가 끝날 무렵,
수원여자대학교 겸임교수로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하면서 나의 교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교수로서 수업을 시작하면서 관계가 상당히 인터랙티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는 학생에게 지식과 경험을 가르치지만
학생은 교수에게 변화와 응용을 공유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 요즘 친구들이 나보다 더 빨랐다.
요즘 친구들을 1)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이 일상이다 보니 한 가지를 알려주면 10가지를 응용해 버린다.
이건 따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친구들의 이런 감각을 인정했고,
함께 성장하면서 배우는 관계라고 표현했다.
늘 친구들에게 우리는 크루(crew)다 라고 표현했고,
친구들도 그 표현을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 강의실은 교수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공간이 아닌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공간이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디자인 개발자 실무체험에 가까운 수업
수업은 실무 체험형으로 구성했다.
디자인은 단순히 듣고 읽는 것만으로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처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해
아이데이션, 자료 수집, 트렌드 조사, 샘플 제작, 상업화까지
디자인이 완성되는 전체 과정을 경험했다.
수업 중 한 학생이 “처음으로 디자이너의 하루를 살아본 것 같아요”라고 말했을 때,
이 수업 방향이 옳았음을 느꼈다.
둘째,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빠르고 자연스럽게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다.
그래픽 프로그램은 그다음 문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래픽 프로그램 기술이 부족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100%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이론에 맞는 실기 수업과 과제를 통해
학생들이 그래픽 환경에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도록 지도한다.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실제 작품으로 구현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학생들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고, 표현력과 기술을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다.
셋째, 디자이너 아이덴티티 탑재하기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
누군가 ‘자기소개를 해보세요’라고 물었을 때, 흔히 나오는 대답은 이렇다.
“저는 서울에서 1남 1녀로 태어나 그림에 재능이 많아서,
고등학교 때 진로를 디자인으로 결정했고 그래서…”
이런 식의 자기소개는 솔직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한마디가 훨씬 강하게 남는다.
“저는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강아지로 굿즈 같은 것들을 자주 디자인합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이고, 디자이너 소개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하며, 그 점을 스스로 홍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자신만의 디자인적 아이덴티티를 개발하도록 지도한다.
그리고 그 아이덴티티가 실제 작품과 표현에 녹아날 수 있도록
관련 트레이닝도 진행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색깔과 개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표현할 때,
비로소 그들의 디자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자신만의 메시지를 가진 작품으로 완성된다.
넷째, 디자이너 인터넷명함, 개인 홈페이지 만들기와 SNS 활용
지금은 자기 PR 시대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프로필과 포트폴리오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디자이너 개인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보는 작업을 진행시킨다.
또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용한 본인 홍보도 함께 지도한다.
아직 학생이지만, 자신만의 커리어를 큰 그림으로 그려보고 정리해가는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작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성과를 외부에 보여주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다섯째, 다양한 디자인 분야와 실무 이해를 위해 외부 강사 초청과 사례 분석을 진행했다.
산업 디자이너, 시각 디자이너 등 각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초대해
학생들이 직접 질문하고 토론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디자인 영역별 차이와 현장 트렌드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교수로서 수업을 설계하며,
나는 단순히 강단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학과 차원에서도 융합 교육과 비제도권 프로그램을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
산업 디자인 영역에서는 경영학, 공학과의 융합이,
시각 디자인 영역에서는 심리학, 문화, 기호학과의 융합이 필요했다.
또한 기존 정규 교육 프로그램에서 얻기 힘든 경험을
비제도권 워크숍에서 얻도록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자, 5차 산업혁명의 서막이 열리는 시점이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나는 디자인 교육에서도 새로운 접근을 강조한다.
디자이너가 디지털 제조, AI, 최신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외부 자극과 최신 정보를 제공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자신의 디자인 감각과 사고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하나의 크루(crew)로서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경험을 이어가고 있다.
1)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 이 용어는 2001년에 마크 프렌킨(Marc Prensky)이 처음 사용했는데, 디지털 기술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를 지칭하고 스마트폰, 인터넷, SNS 등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자란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