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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반 전쟁터에서 배운, 버티는 힘

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라면 넘어설 수 있다

by 비심플

나는 디자인과 겸임교수와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7년째 신기하게도 거의 졸업반만 맡았다.

디자인과 졸업반의 2학기는 그야말로 전쟁터다.

10월이나 11월초에 있는 졸업전시가 디자인과의 꽃이기 때문에 밤낮없이 학생들은 졸작에 매달린다.



처음에 학생들에게 졸업전시를 준비하자고 하면 그야말로 가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댈지 몰라서,

어떻게~~~ 어떻게~~~ 하며-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도는 학생들은 이모티콘같이 좀 귀엽다.


mm22.png 위기는 피할 수 없지만, 누군가 방향을 잡아줄 때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나는 (전시오프닝이 2달이 남았다면) 2달의 달력을 화면에 띄운다.

보드펜을 들고 졸업전시부터 역순으로 적는다.

그리고 거꾸로 날짜를 계산해서 포트폴리오와 전시보드가 30일에 납품이 되야 하고,

출력에 7일이 소요된다면 7일전에 출력소에 파일을 보내는 시점 체크,

출력소에 파일 보내기 전에 품평회를 해야되는 날짜 체크,

품평회 전에 디자인에 소요되는 시간 체크, 레퍼런스, 시안, 기획에 들어가는 시간 체크.

이렇게 역으로 체크체크 하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물론 이중에는 화살표가 중복되는 일정도 있다.(응, 맞아 너네가 야작하는 날들이야)

이렇게 일정만 세팅해 주어도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귀여운 학생들이다.


그러나 일정대로 착착착 움직여주길 기대하면 안된다.

아직 사회생활을 안해본 아가들이다.

대표를 정해서 어레인지별로 보고하는 시점을 알려준다.

어레인지 받은 사항과 체크리스트를 학생들에게 공유해준다.

이렇게 학생들은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 되기전 중간보고를 해야되는 이유를 배우게 된다.



그래. 이렇게 차근차근 우리는 잘 준비를 해왔다.

30일 졸업전시 오프닝이다.


헛!!!!! 그런데!!!!!

28일 포트폴리오가 도착을 해야하는데,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25일 품평회에 맞춰 전시보드 픽스를 해야하는데,

23일까지 디자인이 거의 안되있는 팀도 발견한다. 오. 마이. 갓.

뭐 그렇다. 이렇게 전시를 앞두고 변수가 터지는 건 다반사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잠시 눈물 좀 닦고 올께요....



이럴 때 리더는 화를 내기보다, 우선순위를 다시 나눠 잡아 준다.

급하게 출력소를 잡아서 새벽에 인쇄를 맡긴다던지 하는 다이나믹한 어레인지는 아무래도 리더가 개입하는 게 좋다. 안그러면 쫄딱 망하는 수가 있다. (우리 다같이 망하는거야.....)



오늘은 여기까지. 휴 다행-

내일은 여기까지. 휴 다행-



그 작은 단계들이 촘촘히 쌓여야만 위기를 버티고, 결국 우리는 전시장에서 함께 웃는다.



학생들은 그 과정에서 배운다. 위기는 피할 수 없지만,

누군가 방향을 잡아줄 때 다시 걸음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배운다. 리더십은 위기를 없애는 능력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함께 버티는 힘이라는 것을.



당신의 커리어에서도 언젠가 이런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당신은 어떤 리더로서, 어떤 태도로 팀을 이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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