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청풍(淸風)과 종소리는 그에게 오랜 수행의 동반자였을지도 모른
청풍(淸風)은 차갑게 일월(日月)을 씻어 내리고, 학(鶴)은 어디론가 사라진 논밭 위에 고요만이 남았다.
구름은 흔적 없이 스러지고, 바람의 발자취도 간 데 없으니, 이 모든 것이 꿈속의 풍경처럼 아련하다. 앞산에 걸린 적벽(赤壁)은 안개 속에 흐릿하고, 강물은 하늘을 품은 채 흘러간다.
난간 벼랑에 매달린 저 절간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데, 어쩌면 그 소리는 바람과 하나 되어 이 청량(淸凉)한 아침을 노래하는 것일까.
** 청풍루(淸風樓)에 올라**
淸風拂檻月沉西
鹤去田空雲自迷
赤壁山前霧裏隱
江流天際水含暉
청풍이 난간을 스치니 달은 서쪽으로 지고,
학은 가고 논은 텅 비었는데 구름만 아득하네.
적벽산 앞은 안개 속에 숨어 있고,
강물은 하늘 끝까지 흐르며 햇빛을 머금네.
월하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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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의 노승(老僧)은 풀잎에 맺힌 햇살을 보며 홀로 선경(禪境)을 즐긴다. 그의 눈빛에는 세속의 흔적이 없고, 오직 고요함이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이 청풍(淸風)과 종소리는 그에게 오랜 수행의 동반자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지만,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하다. 풀잎 위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모든 것이 자연의 리듬으로 다가온다.
* 바람의 노래 *
학이 간 자리에
구름만이 흩어지고,
강물은 하늘을 삼킨 채
흐른다.
적벽은 안개 속에 잠기고,
절간의 종소리는
바람에 실려
내 맘의 고요를 흔든다.
풀잎 끝에 맺힌 햇살,
그것이 나의 전부일 때,
나는 비로소
세상을 들을 수 있었다.
월하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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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알았으랴.
이렇게 단순한 풍경 속에 삶의 진리가 숨어 있을 줄을. 우리는 종종 거대한 것만을 좇는다. 웅장한 성취, 빛나는 명예, 끝없는 욕망—그것들이 삶의 전부인 양 살아간다.
그러나 청풍루에 앉아 바라보는 이 풍경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바람, 흔적 없이 사라지는 구름, 영원히 흐르는 강물—이 모든 것은 무상(無常)의 이치를 속삭인다.
난간 벼랑에 매달린 절간의 종소리는 그 무상함을 노래한다. 그것은 슬픔도, 환희도 아닌, 오직 ‘있는 그대로’의 소리다.
노승은 그 소리를 들으며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렀을까. 아니면 그는 이미 이 소리와 하나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연의 일부가 되었을까.
세상의 소란 속에서 우리는 종종 ‘청량(淸凉)’을 잊는다. 마음의 더위를 식히는 그 청량함은 번뇌와 욕망으로 가득 찬 현대인에게는 더욱 낯선 감각이다.
그러나 이 절간의 종소리는, 마치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경고처럼, 우리에게 묻는다.
“진정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저 멀리 강 건너편으로 배 한 척이 지나간다. 그 위에는 아마도 어부가 타고 있겠지. 그는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아니면 파도와 바람 소리에만 귀 기울일까.
우리 모두는 저 어부와 같다. 인생의 강을 건너며, 때로는 바람에 휩쓸리고, 때로는 고요를 만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진정한 소리를 듣는 이는 많지 않다.
풀잎에 맺힌 햇살이 스르르 녹아 내린다.
노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는데, 아마도 오늘도 바람이 전해 준 무언가를 깨달았을지 모른다.
나는 이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안다. 이 순간의 고요와 청량함이야말로,
인생의 모든 것보다 소중한 것임을.
그러니 우리도 가끔은 멈추어야 한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강물이 흐르는 리듬을,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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