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영혼의 여름 그늘"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더위 속의 고요한 발견
무더운 여름밤, 창문 밖으로는 귀뚜라미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온다. 선풍기 바람이 책장을 스치며 넘어갈 때마다 종이 사이로 밤공기의 습기가 전해진다.
이런 밤이면 나는 의식적으로 전등 불빛을 약간 어둡게 조절하고, 책상 위에 차가운 보리차 한 잔을 놓는다.
더위와 싸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내부로 끌어안는 방식으로 독서를 시작하는 것이다.
"독서는 영혼의 여름 그늘"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여름의 뜨거움 속에서도 책 속에는 언제나 시원한 지혜의 그늘이 준비되어 있으니.
이번 여름, 나는 특별히 '열대야 독서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해가 지고 나서야
진정한 독서 시간이 시작된다는 각오로.
夏夜讀書
"燭花頻剪夜三更 (촉화빈전야삼경)
불꽃 자주 깎으며 밤 삼경인데
獨對遺編萬感生 (독대유편만감생)
홀로 남은 책 대하며 만 감정 생기네
蟬曳殘聲過別樹 (선예잔성과별수)
매미 흔들며 남은 소리 다른 나무로 가고
月移虛影入空庭 (월이허영입공정)
달 기울어 빈 그림자 빈 뜰에 들어오누나"
이 덕무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가 남긴 이
한시는 여름밤 독서의 정수를 담아낸다.
삼경(밤 11시~1시)까지 책을 읽으며 촛불을 다듬는 모습, 매미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가는 소리, 달빛이 뜰을 비추는 고요한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현대의 우리가 에어컨 소음 대신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독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시간은 흘렀어도 지식과 마주하는 인간의 자세는 변하지 않음을 느낀다.
책장 넘기는 소리 하나
어느덧 새벽 1시를 훌쩍 넘겼다.
이제는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시간.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운다.
오늘 읽는 책은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황폐한 땅에 오롯이 나무를 심으며 인생을
보낸 한 남자의 이야기가, 이 무더운 밤에
왠지 시원한 바람처럼 다가온다.
"그는 말없이 홀로 일했다. 아무도 그의 노력을 알지 못했고, 아무도 그의 헌신을 칭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그는 이미 자신의 행복을 찾아낸 사람이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문득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회사에서, 길에서, 카페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 각자가 자신만의 '나무'를 심고 있을까?
여름밤 독서의 매력은 이런 사색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낮의 소란과 열기가 가라앉은
이 시간, 책 속 문장들은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여운을 남긴다.
여름밤 독서 - 김용택
"책을 덮으면
방 안이 더욱 고요해진다
종이 사이로 스민
잉크 냄새가
내 무의식을 훑고 간다
마치 밤바다처럼
생각들이 출렁인다
한 줄기 문장이
깊은 심연에서
반짝이는 진주처럼
떠오를 때
나는 알 수 없다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나를 읽는 건지"
김용택 시인의 이 시는 여름밤 독서의 신비로운 경험을 잘 포착해낸다. 책과 독자가 서로를 읽어내는 그 교감, 문장 속에서 발견되는 반짝이는 통찰, 모든 것이 여름밤의 정적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나는 시를 읽고 나서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책의 빛은 계속될 것 같다.
새벽 2시의 깨달음
책을 덮을 시간이 되었다.
오늘의 독서는 특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여름밤의 독서는 낮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잠든 시간, 나와 책만이 깨어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이제 서서히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내일도 또 다른 책이 이 무더운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여름은 길고, 독서 목록도 그에 걸맞게 풍성하다. 매일밤 책과 함께하는 이 시간들이 쌓여 하나의 여름을 이루리라.
창가에 앉아 마지막으로 오늘 읽은 책의 문장을 음미한다.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여름밤의 독서는 나에게 그 '새로운 눈'을 선물해주는 시간인 것 같다. 내일도, 모레도,
이 무더위가 계속되는 한 이 고요한 밤의 독서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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