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건넨 초콜릿은 마치 녹지 않는 추억 같아서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던 늦여름 오후, 윤지는 오래된 서점 앞에서 우산을 접으며 잠시 망설였다. 창가에 걸린 손글씨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특별히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문을 열자 따뜻한 목소리가 맞이했다. "비를 피하러 오셨나요?" 주인은 눈가에 주름을 펴며 커피를 내렸다. 그 순간,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지붕이 조금 샌답니다."
그는 수건을 던지듯 놓으며 웃었다. "하지만 비소리가 책장을 적실 때면, 마치 글자들이 흐르는 강물이 되는 것 같아요."
윤지는 책들 사이로 흐르는 빗물 향기를 맡았다. 어릴 적, 할머니 댁 마당에 고인 빗물에 종이배를 띄우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그녀가 입을 열자 주인은 이미 사각 초콜릿을 내밀었다.
"맛보세요. 비 오는 날은 초콜릿이 녹는 속도도 다르거든요."
한 시간 뒤, 윤지는 책 한 권을 사들고 다시 비 속으로 들어섰다. 우산을 펼치지 않았다.
등 너머로 서점의 빛이 흔들릴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도 조금씩 녹고 있음을 깨달았다.
---
**〈빗속의 서점〉**
문을 열면
책장 사이로 흐르는 빛
한 방울의 이야기가 되어
내 어깨에 멈추네
주인이 건넨 초콜릿은
마치 녹지 않는 추억 같아서
혀 위에 올려도
사라지지 않는 맛
나는 이 빗속에서
종이배 한 척을 되찾고
흩어진 글자들로
미완성의 노래를 적네
---
**추가 이야기**
그날 밤, 윤지는 집 창가에 서점에서 산 책을 놓았다. 페이지 사이로 낯선 필체의 편지가 끼어 있었다.
*"비는 우리가 흘리지 못한 눈물을 대신 내려줍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다시 서점으로 향했다.
문 앞에는 빗물에 젖은 종이배 한 척이 놓여 있었다.
---
〈늦여름의 편지〉
종이배는
너무 얇아서
모든 비를 담지 못하네
나는
너무 무거워서
한 방울도 흘릴 수 없네
그래서
우리는 비 속에서
서로의 그릇이 되기로 했네
#늦여름 #장맛비 #서점 #단상 #사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