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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의 서정 ― 바람이 기억하는 존재의 빛

모든 것은 상실을 통해 온전해지고, 부재를 통해 존재는 빛난다.

by 월하시정


가을은 우주의 호흡처럼, 느리면서도 필연적으로 다가온다. 그 중에서도 초가을은 가장 은밀한 계절의 전환이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완전히 스러지지 않은 채, 서늘한 바람이 살갗을 스칠 때,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흐름이라는 신비로운 질서 안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초가을의 하늘은 유리처럼 맑고 심연처럼 깊다. 구름은 실처럼 흩어져 있고, 햇살은 시(詩)의 행간처럼 은은하게 스민다.


그 빛이 나뭇잎의 가장자리를 적시면, 아직 청춘의 생기를 간직한 잎과 이미 황금의 지혜를 머금은 잎이 함께 춤추며, 존재의 이율배항을 노래한다.

초가을은 본질적으로 이중적인 빛깔을 지닌다. 떠나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 열정과 평정,

기억과 기대—이 대립되는 것들이 맞닿은 경계에서 우리의 감각은 더욱 예리해진다. 바람은 여름의 열기를 식히지만, 동시에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온기를 불러온다.


논과 밭은 생의 결실을 고백하고, 산길은 여전히 청아한 숨결을 잃지 않는다. 이 경계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라는 유일하면서도 영원한 순간의 진리를 마주한다.


拂曉風輕葉欲飛
秋聲漸入夢中歸
遠山靑黛雲如墨
心寄蒼穹又一稀

(새벽 바람 가볍게 불어 잎은 날리려 하고
가을 소리 점점 깊어 꿈결로 돌아가네.


먼 산은 푸른 먹빛, 구름은 먹처럼 번져
마음은 하늘에 맡기니 다시 한 번 드물게 맑구나.)

이 시는 초가을 새벽의 정취를 담아낸 순간의 초상이다. 밤새 내린 이슬은 시간의 눈물처럼 풀잎 끝에 맺히고, 연한 바람에 잎사귀는 이별의 예감처럼 떨린다.


아직 낙엽이 쏟아질 때는 아니지만, 가지 끝에서는 이미 이별의 운율이 피어오른다.

먼 산은 안개 속에서 청묵(靑墨)의 색으로 물들고, 구름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하늘을 적신다. 이 풍경 앞에서 마음은 저절로 확장되고, 우리는 스스로의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무한(無限)을 향해 열린다.

초가을의 고요한 새벽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문(門)이다.

나는 초가을을 ‘시간의 창(窓)’이라 부른다. 여름이라는 뜨거운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바람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가장 완벽한 온도로 우리를 맞이한다.


하늘은 더 높아지고, 시야는 더욱 멀리까지 열린다. 그러나 이 창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다. 곧 차가운 겨울의 문턱이 내려앉으면, 우리는 다시 침묵의 계절로 들어선다.


그렇기에 초가을의 바람은 더욱 귀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하면서도

일시적인 깨달음의 숨결이기 때문이다.

들판을 걸을 때면, 벼이삭이 바람에 출렁이며 고개 숙여 인사한다. 햇살은 그 사이로 스며들어 황금빛 물결을 만든다.


논두렁에 핀 코스모스는 바람에 흔들리며, 지나가는 이에게 미래의 약속을 속삭인다.

이 풍경은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낸 시간의 결실이자,

살아갈 시간의 서곡(序曲)이다.


초가을의 자연은 이렇게 우리를 삶의 중심

—그 진정한 의미의 자리—로 불러낸다.

초가을의 노래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지난 계절의 땀을 식힌다.

햇살은 투명한 유리창처럼
세상을 맑게 비추고,

나는 멈추어 선 길가에서
한순간 모든 시간이
겹겹이 흘러드는 소리를 듣는다.

떠나간 여름의 그림자가
아직 내 발끝에 남아 있지만,
다시 오는 계절의 발걸음이
내 어깨 위로 가볍게 내려앉는다.

초가을,
너는 언제나 이별과 시작이
동시에 숨쉬는 노래로구나.

이 시가 말해주듯,

초가을은 두 개의 호흡—내쉼과 들숨—을 가진다.

여름을 보내는 이별의 내쉼과,

가을을 맞이하는 시작의 들숨.

그 두 호흡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심장의 두 박동을 동시에 느끼듯, 존재의 울림을 듣는다.


초가을의 길 위에 서면, 떠나간 것에 대한 애착과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가 한데 어우러진다. 그것이 이 계절이 지닌 이중적이면서도 심오한 아름다움—낭만의 본질이다.

초가을의 하늘은 깊고 고요하다.

낮에는 한없이 투명해 우주 끝까지 보이는 듯하다가, 저녁이 되면 금빛 노을이 산과 강을 불태운다. 어스름이 내리면 달빛이 차오르고, 들녘의 모든 것은 은빛의 정적(靜寂) 속으로 잠든다.


이렇게 초가을의 하루는 마치 한 편의 서사시(敍事詩)와 같다.

빛과 어둠,

소리와 침묵이 교차하며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울린다.

나이가 들수록 이 계절의 울림은 더욱 깊어진다. 청춘에는 가을이 낭만과 풍요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그 낭만 뒤에 숨어 있는 덧없음과 고요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덧없음은 결코 허무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깨달음이다. 여름이 떠나갔기에 지금의 서늘한 바람이 있고, 겨울이 다가오기에 지금의 햇살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은 대비(對比)를 통해 그 참뜻을 드러낸다.

나는 초가을을 걸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이 물음은 단순한 계절의 반성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을 향한 철학적 성찰—

나를 이루는 시간과 기억의 의미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우리가 지나온 계절에서 어떤 기억을 품었느냐에 따라, 다가올 계절의 빛깔은 달라진다. 추억을 감사로 간직한 이에게 초가을은 축복의 계절이 되고, 미련과 후회에 사로잡힌 이에게는 쓸쓸함의 계절이 된다.


결국 초가을은 자연이 선사하는 풍경이면서도, 우리 내면이 비추는 거울—우리가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이다.

오늘 나는 초가을의 강가를 거닐었다.

물결은 잔잔히 흘러가고, 강 위에 비친 하늘은 은빛으로 빛났다. 버드나무는 바람에 흩날리며, 강물 위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초가을은 단순한 이별의 계절이 아니라,

이별을 통해 남김(머무름)의 의미를 배우는 계절이라는 것을.


여름이 떠났기에 지금의 고요가 있고,

겨울이 올 것이기에 지금의 햇살은 더욱 소중해진다. 모든 것은 상실을 통해 온전해지고, 부재를 통해 존재는 빛난다.

맺음말

초가을은 단순한 자연의 한 시기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자신을 성찰하는 계절이고,

삶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바람은 어제를 데려가고, 햇살은 내일을 비춘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지금’이라는 유일한 현실을 살아간다.


초가을의 서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그 빛과 그림자, 기쁨과 슬픔, 시작과 끝—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초가을이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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