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가까워도 먼 그곳

- 자전거를 타고 건너 본 대마도 여행 -

by 도시백수

추억은 기억을 돕고, 기억은 다시 추억이 된다.


고민이 점점 깊어진다. 나만의 정석대로 금요일 새벽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심야고속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 초반부터 날씨가 점점 추워졌다. 지난주까지는 얇은 패딩으로도 괜찮더니, 이번 주 들어서는 다운 점퍼를 입어야 할 정도다. 목요일 오후 들어 고민은 절정에 달했다. 서빙고역에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까지 한강 바람은 밤과 함께 매서울 것이다. 금요일 부산의 새벽도, 국제여객터미널의 아침도, 맨몸으로 견디긴 힘들 것 같았다. 결국 고속버스 예매를 취소하고 직접 차를 몰고 부산까지 가기로 한다.


퇴근 후 출발 준비를 마쳤다. 자전거는 분해해 뒷좌석과 트렁크에 나눠 실었다. 대마도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기에 짐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다만, 방한을 위해서 핫팩을 여러 개 준비한다. 밤 9시, 곧바로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긴장 탓인지 졸리진 않았다. 휴게소는 딱 한 곳만 들르고, 쉬지 않고 달렸다. 새벽 1시 조금 넘은 때에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2년 전의 구 터미널은 없어지고 잘 지은 신 터미널이다. 지금 시간에 원래 그런 것인지 출입구를 모두 막아 놓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트렁크에 있는 침낭을 꺼내 차시트에 깔았다. 긴장이 풀린 몸을 겨우 구겨 넣었다. 의외로 안락하다.


중간중간 뒤척였지만 아침 7시까지는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 일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출국 심사를 하고 자전거 여행객들이 배에 먼저 오른다. 내 자전거 말고도 여러 대가 더 실렸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대마도에 가는 모양이다. 빈 좌석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모자란 잠을 청한다. 어차피 부산에서 이즈하라까지 2시간 넘는 거리다. 혼자인 나는 잠을 자는 것이 가장 좋다. 그래야 몸 상태를 조금이라도 좋게 할 수 있으니까.


입국할 때와는 반대로 자전거가 마지막에 하선한다. 이미 경험이 있어, 조급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자연스레 주변에 눈길이 간다. MTB부터 로드 바이크까지 각양각색의 자전거들이 보였다. 그 옆에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이었지만, 아주 젊은 친구들도 보였다. 나는 저 때쯤에 뭐 하고 살았나 잠시 되돌아봤다. 저들만큼 재미있게 산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앞으로 더 재미있게 살자고 마음먹었다.


길고 긴 입국 심사를 마치고 12시쯤 터미널 청사를 나섰다. 오늘 일정이 다소 급하지만, 그래도 점심을 먹어야 달릴 수 있다. 이즈하라 중심을 흐르는 운하 위 세 번째 다리 옆에 있는 '메시야'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메시야'는 우리말로 '밥집'이란 뜻이다. 이름도 소박하지만 외관도 참 소박하다. 한 블로그의 짧은 소개글 덕분에 주저 없이 들어갔다. 뭔가 어색하기만 한 주문 뒤 돈가스 정식을 먹었다. 괜히 급하게 먹다가 탈이 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평소와 다르게 천천히 먹는다.


지리적으로 아무리 가까워도 이곳은 일본이고 난 혼자다. 몸에 탈이라도 나면 정말 힘든 여행이 될 것이다. 사실 출국하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낙동강 자전거 종주 후 재발한 목 디스크 덕분에 근 3개월 동안 안장에 오르지 못했다. 날씨까지 급작스레 추워지니, 여행 자체를 취소할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마도의 가을을 꼭 보고 싶어 2년을 넘게 별렀던 일이기도 했고, 오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걸 알았기 때문에 강행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즈하라는 2년 전에 충분히 돌아봤기 때문에 식사를 마치자마자 382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달렸다. 시내를 벗어나니 곧 터널이다. 이미 알고 있었다. 대마도의 오르막과, 터널과, 내리막을. 평지는 해안가 마을쯤 잠깐씩 있고, 90% 이상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다. 그런데 그 오르막이란 것이 말 그대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막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순간에는 끝이 나버린다. 그리고는 터널을 지나 시원한 내리막길. 사람을 악에 받치게 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 준다.


중간중간 해안가 마을을 지나고, 숲을 지나고, 아주 드물지만 들을 지난다. 2년 전에 봤던 풍경들이 다시 떠오른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이나 휴식을 취했던 장소들까지 기억이 났다. 참 반갑다. 지난 추억들과의 조우가.


달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좀 넘은 시간 같다. 대마도 공항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만제키바시에 이른다. 강렬한 붉은색의 아치형 철제 다리다. 일제가 러일전쟁을 위해 육지를 뚫어 수로를 냈고, 그 위를 다리로 연결한 것이 만제키바시다. 역사적 인식을 공유하고 있을 일본인들에겐 뭔가 뜻깊은 곳일 수 있겠지만, 한국인인 내게 있어 별로 감흥을 느낄 만한 곳은 아니다. 오히려 일제 침략의 한 모습인지라 반감까지 들고 만다. 하지만 대마도의 몇 개 되지 않은 관광 명소이기 때문에 옹기종기 한국 여행객들이 보인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래 머물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역시 별 재미는 없나 보다.


나는 대마도의 자연과 소박한 풍광이 좋다. 우리나라에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물수리가 나는 모습이 지천이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풍기는 울창한 삼나무 숲에선 피톤치드라는 것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 좁지만 아기자기하게 가꿔놓은 들판의 모습이 인간적으로도 참 정겹다. 나직나직 들어앉은 저들 살림집 모습도 재미있고, 자연을 과하지 않게 다듬어 놓은 모습에선 지혜조차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소하지만 잘 골라놓은 도로들과 자전거를 절대 위협하지 않는 자동차 운전 문화에는 부러움까지 느끼게 된다. 정말 일본이라는 가림막만 걷고 보면 참 좋은 곳이다. 다만, 얼핏 느껴지는 그 '일본'과 '일본 사람들'이란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좋은 것과 곳들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저들의 시선을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늘은 382번 국도만 계속 따라가야 한다. 오후에 출발했고, 지금은 일찍 해가 지는 계절이다. 체력 안배나 어깨 상태도 신경 쓰여 일본어로 '요리미치(도중에 옆길로 빠지거나 다른 곳을 들르는 등의 일)'할 여유는 없다. 부지런히 주변 풍광들에 눈길만 주고 연신 페달을 굴렸다.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쯤 신화의 마을에 도착했다. 신화의 마을에는 대마도의 전경을 동서남북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는 에보시타케 전망대와 바닷물에 잠기는 도리이가 인상적인 와타즈미신사가 있다. 전망대 오르는 길은 곁눈으로만 지나치고 신사 앞으로 곧장 나아간다. 좁은 만의, 역시 좁은 계곡을 끼고 신사가 들어앉아 있는 탓에 이미 어둠의 기척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일본에는 신사의 입구임을 알리는 도리이가 우리나라 밤하늘의 십자가만큼이나 많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그 도리이 안쪽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일본'이라는 가림막이 짙게 드리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도리이 바깥에 머물렀다. 만조 시간이라 마침 바닷물에 잠겨있는 두 개의 도리이 기둥만 보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젠 숙소가 있는 미네까지만 가면 된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고,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리니 작은 어촌 마을인 미네가 나타났다. 그래도 대마도에서는 제법 큰 마을인 걸까? 학교도 보이고, 무슨무슨 센터 하는 것도 보이고, 여러 시설들이 제법 보인다. 온천도 있다 했지만, 마침 오늘은 휴관이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데우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밀려왔다. 오늘의 숙소는 오오하시(큰다리) 여관이다. 말 그대로 큰 다리를 건너 왼편에 바로 여관이 나타났다. 오후 5시 30분, 5시간 정도로 51km 라이딩을 마쳤다.


여관은 바로 앞에 넓은 수로를 끼고 있었다. 작고 오래된 건물로, 민박 정도다. 내가 묵을 방은 2층에 있었다.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 식사를 했다. 식사 자리에서 다른 자전거 여행객팀을 만났다. 오늘 입국장에서 한 번, 와타즈미신사에서 또 한 번 마주친 그들이었다. 문경에 사는 선후배 사이로, 모두 다섯 명이 함께 한다고 했다. 나하고 여행사와 일정이 똑같다. 이 팀은 다음 날 숙소에서도, 또 부산으로 가는 출국장에서도 함께하게 된다.


오늘의 '사시미' 당번이라 회를 직접 뜨고 나서 인사를 나온 여관 주인장과 이런저런 대화들이 오고 간다. 듣던 대로 성의를 다해서 응대하는 모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여관 바로 앞의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남았다는 사케 1캔을 샀다. 방으로 올라와 일본 새우깡과 함께 마셨다. 이제 자야 할 시간이다.


일본의 밤은 참 춥다. 벽체도 얇은 데다 따로 난방을 하지 않는다. 옛날 솜이불 수준인 이불 밖을 나서면 바로 한기가 든다. 등과 목에 핫팩을 몇 장 붙이고 내일 거뜬히 일어날 수 있길 기원하며 잠을 청했다.


그리웠던 것들과의 조우


토요일 기상과 함께 이른 식사를 했다. 어제 저녁상과는 달리 단출한 식단이지만, 아침상으로는 이상적이었다. 문경 선후배팀은 식사를 마치고 바로 라이딩을 시작한다. 오늘도 382번 국도를 따라 최단거리로 숙소에 도착할 예정이라 한다. 일찍 도착해서 낚시를 한다고 하니 저녁때쯤 왁자지껄한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나는 48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나아간 뒤 시카에서 39번 현도를 만나 그대로 히타카츠까지 갈 생각이다. 오늘의 포인트는 킨의 은행나무와 슈시강 단풍길 두 군데다. 혹 히타카츠에 도착해서도 시간과 체력이 남는다면 대마도 북쪽 해안가를 돌아 오늘 숙소가 있는 카와치까지 갈 수도 있다. 여유가 된다면 미우다 해수욕장에 있는 온천에 들르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 몸 상태는 괜찮다. 조심했던 덕분인지 어깨도 괜찮고, 다리도 조금 뻐근한 느낌만 있을 뿐 온전하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2년 전에도 달렸던 39번 현도를 이번엔 반대 방향에서 쉬엄쉬엄 나아간다. 어제보단 거리도 시간도 여유가 있기 때문에 서두를 이유는 없다. 이젠 익숙한 풍경의, 더욱이 국도가 아닌 현도라서 그런지, 주변 풍광이 좀 더 다정다감한 그 길을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고 또 달린다. 라이딩하면서 음악 듣기는 처음이었지만, 꽤 도움이 됐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니 체력 소모도 덜한 것 같았다. 워낙 인적 드문 곳이라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킨의 은행나무에 노란 잎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가지가 더 많이 보인다. 나무가 가을을 보내버린 모양이다. 1,500년 전 백제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일본 최고의 은행나무라고 한다. 난 아직 그 무성한 모습은 보지 못한 터라 단풍이 만개했을 무렵을 상상하긴 어렵다. 다만, 나무 둘레만 봐도 신령스러운 나무임에 분명한 것 같다. 아무쪼록 건강하길. 나와 나무 모두 건강하길 기원해 본다.


한참을 더 달려 도착한 슈시강 단풍 숲. 이곳은 어찌 보면 이번 대마도 여행의 목적이었다. 2년 전 묵었던 여관 사장님이 그 절경을 예찬해 마지않았던 탓에 다음 대마도행은 무조건 가을이라 정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으니 그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긴 하지만, 슈시강의 단풍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여러 종류의 활엽수들이 모여 이룬 것도 아니고, 주변 삼나무 숲에 둘러싸여 드물게 자라는 단풍나무만 있는 데다, 날도 흐리고 또, 단풍 자체가 그리 예쁘게 들지 않았다. 오늘 아침, 여관 사장도 올해 단풍은 별로라고 걱정을 했었는데 딱 그대로인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울창한 숲과 바람과 맑은 계곡물이 자아내는 정취는 그것만으로 훌륭했다. 처음으로 옆길로 빠져 숲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본다. 맑은 계곡물이 시작되는 곳까지 임도를 따라 나아갔다. 밟히는 낙엽의 바스락 거림과 삼나무 사이를 휘감아 도는 맑고 서늘한 바람. 그리고 오솔길 옆 졸졸 흐르는 시내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카메라의 동영상 모드로 360도 회전하며 그 모습을 담아본다. 나중에 두고두고 봐야지. 그러면 오늘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다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더더욱 여유가 생겼다. 대마도에 온 목적은 모두 달성했고,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인데 숙소도 멀지 않으며 몸 상태도 나쁘지 않다. 히타카츠를 지나 382번 국도를 거슬러 내려가면 바로 숙소에 닿지만, 해안 쪽 길을 타고 미우다 해수욕장 쪽으로 달렸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은 온천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상시에는 대중탕에 가는 것도 손에 꼽는 정도인데 일본에 오면 꼭 온천욕이 하고 싶어진다. 온천 자체가 유명한 나라이기도하거니와 여정의 피로를 풀기엔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미우다 해수욕장 바로 왼편 언덕 위에 '나가사노유' 온천이 있다. 입욕료 500엔에 수건 빌리는 데 100엔이다. 아무도 없다. 욕장 안에 나 혼자뿐이다. 노천탕이 폐쇄 중이라 아쉽긴 했지만, 전면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뜨거운 탕에 들어가 앉는다.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로 등과 다리를 마사지한다. 도심의 목욕탕에서 느낄 수 없는 청량함과 따스함,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며 스르르 감기는 눈을 그대로 두었다.


짙은 구름 사이로 밝은 해가 잠깐씩 얼굴을 비춘다. 그 빛에 따라 북쪽 바닷길 풍경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관광객이 드물어, 고즈넉함이 더해지니 정말 떠나기 싫어졌다. 이런 바닷가에 오래 머물면, 있는 병이 나을까? 아니면 외로움에 지쳐 없던 병이 생기게 될까? 그렇게 오래 머물러 볼 기회가 나에겐 없을 테니 실험해 볼 순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자의 여유로움일까? 정말이지 설렁설렁 자전거와 함께 길을 따라갔다. 저 터널만 지나면 오늘의 숙소인 '야나기소'가 있는 카와치라는 곳이다.


웬 시골 마을에 이리 큰 마트가 있을 수 있는지. 카와치에는 밸류마트라는 대형 슈퍼가 있었다. 우리나라 이마트 정도 될까?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것 같다. 초밥 도시락 하나와 회 한 접시를 사고, 딱 한 컵 분량의 사케를 샀다. 오늘 숙소는 저녁 제공을 하지 않는다. 다해서 1,500엔 정도를 지불했다. 이 정도면 저녁으로 넉넉할 것 같다.


다리를 건너 바다 쪽 한참 외곽에 야나기소가 있었다. 이름에 버드나무 류자가 들어간 걸로 봐선 뭔가 관련이 있을 법도 하지만, 일본에서는 흔한 이름이기에 크게 관심을 두진 않는다. 말 그대로 문 앞이 바다인 작은 어촌의 외떨어진 건물이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옆집이라 불릴 만한 것도 없다. 주로 낚시객들을 염두에 둔 숙소 같은데, 하룻밤 묵어갈 객이 이것저것 따질 필요는 없었다. 총 68km의 라이딩을 7시간 정도로 마친다.


이미 도착한 문경 선후배팀은 낚시를 끝내고 식사 준비를 하고들 있었다. 나에게 소주 한 잔을 권했지만, 술을 많이 마실 수도 없고 또 아까 산 저녁거리가 있기에 사양하고 내 방에 들었다. 어제보다 더 춥다. 에어컨 겸용 난방기는 뭔가 문제가 있는지 끊임없이 덜덜덜 거렸다. 어쩌지 못하고 잠들기 전 플러그를 뽑아버렸다.


밥을 먹고 나니, 무료해졌다. 밖으로 나가 어슬렁 거리니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냐옹 거리며 다가온다. 꼬리가 너구리처럼 생긴 고양이다. 무릎에 올려놓고 한참을 조몰락(?) 거리며 놀았다.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 밖은 정말 위험하다. 다행히 이불 안은 무척 따뜻했다. 고양이를 희롱하던 날 보며, 주인 할머니는 '아시타(내일) 오카에리(복귀) 데스까'하고 물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물음이 귓가에 계속 울렸다. 돌아가기 싫은가 보다.


기약이 있으니 오늘을 산다.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고, 짧은 라이딩 후에 히타카츠 도착. 아지로의 연흔이란 것을 보러 다녀오고, 바닥 좁은 히타카츠 시내를 이곳저곳 하릴없이 다니다 12시가 되어 부산행 대아고속 '오션플라워호'에 승선했다. (총 10km 라이딩) 히타카츠에서 부산까지는 1시간 거리인데 올 때와 다르게 뭔가 무척 지루했다.


2년 넘는 동안의 기다림은 모두 끝났다. 왕복 3시간이면 오고 갈 수 있는 곳인데 여러모로 참 어렵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앞으로 몇 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모두 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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