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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근로감독 청원과 창립 3주년 그리고 잠시 멈춘 주말

2025년 9월 1일 ~ 9월 7일 주간기록

by 기록하는노동자

이번 주는 숨 가쁘게 달린 끝에 겨우 숨을 고른 한 주였다.

455페이지짜리 특별근로감독 청원서를 제출했고 노동조합 창립 3주년을 맞았다.

끝내 지쳐 바다로 달려가 따뜻한 일출을 만났고 그제야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9월 1일, 청원서를 완성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다

시한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9월 2일까지 회사가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으면 9월 3일, 우리는 특별근로감독 청원을 제출하러 간다.
14페이지짜리 청원서, 441페이지에 달하는 첨부자료.
한 달 넘게 붙잡고 읽고 고치고 다시 붙이고, 그 모든 문장을 오늘 다시 한 줄씩 점검했다.

머릿속은 온통 논리와 자료로 가득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까? 혹시 빠진 건 없을까?”
몇 번을 읽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저녁에 여의도에서 환노위 보좌관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점심으로 당기자고 연락이 왔다.
부천 사무실에서 여의도까지 부리나케 달려갔다. 식당 한쪽에서 지난 3년의 기록을 풀어놓았다.
부당해고, 2차 해고, 끊임없는 무대응과 노조탄압, 단체협약 체결까지.
말하는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현실인데, 그는 묵묵히 끝까지 들어주었다.

“지치지 말고 계속 싸우세요.”
짧은 격려 한마디에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사무실로 돌아와 자료를 출력하려는데 프린터 토너가 떨어졌다.
“아, 이런 날에…”
토너 4개 교체 비용이 30만 원이라니, 프린터를 한 대 더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결국 벌크형 토너를 찾아 6만 원대에 주문. 구매 버튼을 누르면서 괜히 서럽고 눈물이 날 뻔했다.

토너도 떨어지고 체력도 바닥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싶다. 그냥 집으로 향했다.

9월 2일, 책으로 남길 기록, 세상에 알릴 용기

오전엔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다.
‘출근 대신 기록합니다 乙의 일지’, ‘버티는 중입니다 위원장의 비밀일기’
30편씩 미리 보내드린 글을 놓고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텀블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는 계획,
노동조합의 현실을 알리겠다는 의도에 깊이 공감해 주셨다.
“좋은 메시지가 될 것 같습니다. 꼭 해보세요.”
그 한마디가 나에게 큰 힘이 됐다.


처음 노동조합을 시작할 때, 나는 의문이 많았다.
“왜 노동조합 이야기를 쓴 책은 이렇게 적을까?”
시간이 흐르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끝없는 탄압 속에서 싸우다 지쳐 떠난 동지들.
투쟁을 이어가느라 글 한 줄 남기기도 힘들었던 동지들.
먹고살기 급급해 기록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동지들.

그리고 나 역시, 지금도 힘든데 그 시절을 다시 꺼내 회고하려니
마음 한구석이 다시 무너지고 정신적 피로는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잊히기 전에, 누군가는 남겨야 할 이야기이기에.

지금 돌아보면, 참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라져 가던 싸움의 흔적을 다시 세상에 붙잡아 두는 일이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버티고 버티며 기록만 남겼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이미 내보였으니 이제는 널리 알리자고 마음먹었다.
누군가 그 길을 따라올 때, 조금이라도 덜 외롭도록 덜 괴롭도록.


밤늦게까지 메일함을 들여다봤다.
전화기를 붙잡은 손에서 땀이 났다.
하지만 회사의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내일은 정말로 특별근로감독 청원을 하러 간다.

9월 3일, 노동조합 창립 3주년, 그리고 청원 제출

서류상으로는 9월 5일이지만 오늘은 우리 노동조합의 진짜 생일이다.

3년 전 오늘. 8명이 모여 첫 창립총회를 열고 노동조합을 시작했다.
긴 투쟁에 기념품 하나 만들 여유도 없었지만, 우리에겐 기록이 있다.
오늘의 선물은 위원장이 직접 완결한 3년의 기록, 브런치스토리 2권의 링크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물.
455페이지짜리 특별근로감독 청원서.

우리가 느낀 약 10년간의 부당함 중 가장 급한 내용을 먼저 담았다.

토너가 없다. 급한 마음에 택배 기사님께 전화를 걸어 직접 가지러 달려갔다.

토너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와 오전 내내 프린트를 돌렸다.
프린트가 덜컥덜컥 돌아갈 때마다 심장이 같이 뛰었다.


오후 2시, 고용노동부 남부지청.
손에 묵직한 서류뭉치를 들고 면담실에 앉았다.
과장님은 차분히 얘기를 들었지만, “특별감독은 요건이 까다롭다”라고 거듭 말했다.
그래도 난 믿는다.
3년간 이어진 무대응과 노조탄압, 미이행된 복직명령.
어떤 신호라도 이제는 나와야 한다.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창립 3주년이었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03-02.jpg 총 455페이지 특별근로감독 청원서 봉투 4개에 나눠 담았다
9월 4일, 보도자료 배포와 다시 시작된 홍보

출근하자마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곧 기사 하나가 올라왔지만, 40여분 만에 사라졌다.
속에서 불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텀블벅 프로젝트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집중해 한 문장 한 문장 빈칸을 채웠다.
점심에는 기자님을 만나 보도자료와 특별근로감독 이야기를 했다.
긴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모습에 또다시 힘을 얻었다.


하지만 오후엔 YTN노동조합에서 충격적인 입장문을 배포했다.
우리 이슈가 묻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다른 기자님들께 연락을 돌렸다.
답답하니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03-03.jpg
9월 5일, 자존감이 무너진 날, 바다로 도망치다

회사에서 YTN관련 입장문을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임직원 여러분의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속에서 무언가 무너졌다.
노동자들의 자존감은 이미 땅에 떨어졌는데, 회사는 그저 형식적인 말로 끝내려 했다.

즉각 공문으로 구체적 방안을 요구했다.
하지만 마음은 더 허무했다.


친한 동생이 바다로 가자고 했다.
계획도 없이 차를 몰아 동쪽으로 달렸다.
속초에 도착해 밤바다를 보며 소주를 기울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인생은 써도 오늘 밤은 달다고 웃고 싶은 밤이다.
오늘만은 복잡한 일 다 내려놓고 싶었다.

9월 6일, 일출이 전해준 ‘괜찮아’라는 말

아침 6시 전에 눈이 떠졌다.
동생은 자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방파제로 나갔다.
해가 바다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뜨거울 줄 알았던 아침 햇살은 의외로 따뜻했다.
햇살이 바다 위를 일직선으로 달려 나를 안아주었다.
마치 나를 향해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났다.

조금은 마음이 풀리고, 안도할 수 있었다.

9월 7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회복의 시간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늘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나를 위해 시간을 썼다.

머리를 비우니 다시 기록할 힘이 생겼다.

또 한 주를 살아낼 힘도.

출근대신기록하는노동자의주간일지03-01.jpg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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