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8일 ~ 9월 14일 주간기록
이번 주는 두 해 전의 기억이 덮쳐와 더 무겁게 시작되었고, 답 없는 교섭장에서 더 깊은 회의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가족의 웃음과 아이의 순수한 얼굴 덕분에 잠시 숨을 고르며 한 주를 마칠 수 있었다.
9월 8일, 벌써 이년
해고당한 뒤로는 늘 휴일 뒤 출근일이 몹시 힘들다.
그나마 사무실이 생기면서 조금은 안정감을 찾았지만, 오늘 아침은 더더욱 힘들었다.
바로 이 날, 2년 전 나는 해고통보를 받았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지 3년, 해고된 지 2년.
그 사이 단체협약을 맺었고, 사무실도 생겼고, 근로시간면제도 최소한도로 받아냈다.
하지만 복직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뜬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나는 유진기업에 노동조합이 거대해지는 것을 바란 게 아니다.
다만 뿌리내리길 바랐다.
우리는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늘 “빨리 달려라”는 강요를 받으며 살아왔다.
빨리 달려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구령대 위에서 지시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혼자 달려 이기는 법만 강요받다 보니 결국 바보처럼 혼자 달리게 된다.
나도 그랬다. 언젠가 구령대 위로 올라가리라 착각하며 목적도 없는 달리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빨라질수록, 더 빠르게 달리라는 요구만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속도를 늦췄다.
옆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리자고 했다.
빠른 사람이 조금은 끌어주고, 뒤처지는 사람은 손잡고 따라오는 대열. 그것이 노동조합이었다.
그러자 구령대 위 사람들은 운동장으로 내려와 대열 후미에 있는 이들을 유혹했다.
“대열에서 벗어나면 너도 구령대에 오를 수 있다. 대열에 남으면 급수조차 받기 힘들다.”
결국 대열의 뒤가 잘려나갔고, 맨 앞에서 깃발을 들었던 나는 그들이 만든 규정에 따라 운동장을 이탈해야 했다.
그러나 심판은 선언했다.
“이탈은 무효다.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구령대 위의 사람들, 곧 회사는 그 판정을 거부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운동장 밖에서, 대열을 바라보며 큰 원을 돌고 있다.
나는 우리 노동조합이 부강해지기보다는 뿌리내리길 바란다.
모두가 조금씩 속도를 맞추며, 의견을 모아 우리의 페이스를 만들어내는 대열 말이다.
그래야 구령대 위의 사람이 아무리 희생만 강요해도 우리는 우리의 호흡과 리듬을 지켜낼 수 있다.
언젠가는 구령대와 대열이 서로 필요할 때 전력으로 달리고 필요할 때는 쉬며 급수를 받을 수 있는 관계로 서길 바란다.
최근 폭군의 셰프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 연지영은 과거로 타임워프해 살아남기 위해 요리를 시작한다.
폭군 왕 이헌은 처음엔 그를 단순히 “입맛을 만족시키는 도구”로만 대하지만,
차츰 그의 요리와 태도에 매료되어 긴장과 호감이 뒤섞인 관계로 변해간다.
폭군 같은 회사도 언젠가 노동조합의 진심을 느낄까?
드라마 속 폭군이 서서히 변하듯, 우리 회사도 미세하게나마 태도가 바뀔 순간이 올까?
부당해고 2년째의 하루는,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달리고, 기록한다.
우리가 함께 달릴 날을 기다리며.
9월 9일, 단호박
오후 3시 37분, 회사에서 공문 두 통이 도착했다.
하나는 4차 임금교섭 관련 회신, 다른 하나는 YTN 그룹 입장문에 대한 노조 요구에 대한 답변이었다.
임금교섭 회신부터 읽었다.
내용은 뻔했다. 이미 제출한 자료 외에는 없고, 공개할 수 없는 건 못 주겠다는 말.
특별근로감독 청원을 유감이라면서, 임금교섭을 빌미로 노동청 진정 여부를 거론하는 게 적절하냐고 반문했다.
“노동조합이 부당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겠다.”
결국 요약하면 이거다.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는 단지 부당하게 변경된 취업규칙의 정당성을 노동청에 확인받겠다고 했을 뿐이다.
이게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다음은 YTN 관련 회신이었다.
노동조합은 이미 9월 5일 공문을 통해 세 가지를 요구했다.
1) “임직원의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공허한 문장이 아니라, 복리후생 확대·심리정서 지원·현장 소통 프로그램 등 실제 조치로 구체화할 것
2) 노사공동 안전·문화 개선 TF와 인력 불균형 해소 협의체를 즉시 가동할 것
3) 교섭의 공회전을 멈추고 최고경영진과 노동조합이 마주 앉는 공식 간담회를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할 것.
우리의 요구는 분명했고, 어느 것 하나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회사의 대답은 단 두 줄이었다.
“귀 노동조합이 YTN 문제와 관련해 언급한 내용은 당사와 협의할 사항이 아니다. 임금교섭에 집중하기를 희망한다.”
노동조합의 세 가지 요구는 그 두 줄 속에서 무참히 갈음됐다.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고,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성은커녕, 최소한의 성의도 없었다.
단호하네. 정말 단호하다.
단호박인 줄 알았다.
9월 10일, 인력부족은 월례회의 불참으로 이어지고
아침부터 사무국장님이 근로시간면제를 쓰고 조합사무실로 출근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었다.
밀린 조합 사무업무를 정리하고, 오후 월례회의 안건을 준비했다.
사무국장님과 의견을 주고받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늘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오후 1시, 월례회의 시작 시간.
그러나 영업부서에 있는 운영위원들이 모두 현장에 묶였다.
건설현장이 줄어들고 관리가 강화되면서, 현장을 이탈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상황을 보겠다”는 말은 들었지만 결국 아무도 오지 못했다.
세 명의 부위원장님 중 단 한 분만 참석.
결국 나와 사무국장님까지 포함해 고작 세 명으로 회의를 열었다.
근로시간면제가 있어도 인력이 부족해 실제로 쓰지 못하는 현실.
한 사람이 빠지면 남은 인원에게 업무가 더 쏠리는 구조.
이 문제를 풀고자 TF 구성을 제안했지만, 회사는 여전히 단호하게 거부만 하고 있다.
중요한 안건은 다음 주 워크숍에서 다루기로 하고, 현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회의가 끝나니 어느새 5시.
주간회의를 할 때는 한 시간 남짓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 모이다 보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저녁에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텀블벅 프로젝트에 올릴 책 표지 시안을 결정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시안이 있어 고민도 없이 골랐다.
이 표지는 텀블벅 한정으로만 사용하고, 이후 POD로 발행할 때는 다른 표지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어느덧 수요일이 저물었다.
9월 11일, 답 없는 교섭장
서서울공장 3층 회의실.
오전 10시, 4차 임금교섭이 시작됐다.
회사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3% 관행 주장은 틀렸다.
임금동결 사유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레미콘 업황은 절망적이다.
대출이나 RSU 자료는 경영상 비밀이라 줄 수 없다.
명확한 인상계획은 아직 ‘검토 중’이다.”
3개월째, 같은 답변이다.
동결인지 인상인지조차 말하지 못하면서, 그저 검토 중이라며 시간을 끌었다.
나는 단호하게 맞섰다.
“명확한 인상률 안이 없다면, 이건 교섭이 아니라 기만이다.
5월 1일 임금조정일로부터 이미 4개월이 지났다.
노동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
경영진은 수십억 원의 RSU를 챙기면서 무슨 책임을 졌는가?”
잠시 교섭장이 고요해졌다.
결국 회사는 오늘도 구체적 안을 내놓지 못했다.
노동조합은 더 이상 이런 공회전을 받아줄 수 없다고 선언하고, 교섭은 54분 만에 끝났다.
내 마음엔 씁쓸함과 동시에 결심이 남았다.
다음 5차 교섭에서도 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제 공적 절차로 갈 수밖에 없다.
회사가 시간을 죽이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더 무겁게 내려앉고 있다.
9월 12일, 고민의 시간
최근 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특검의 수사대상에 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9월 3일,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 청원을 제출했다.
이번 주에는 실제로 공정위가 회사와 계열사를 찾아와 조사를 벌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노동조합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
하지만 우리는 3년 전부터 이미 이런 상황 속에서 버텨왔다.
회사가 마음만 고쳐먹는다면, 문제 해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위원장 부당해고를 사과하고 복직시키면 된다.
그간 대화가 없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과거를 덮고 미래를 보자는 것이다.
노사상생 프로그램을 함께 이수하면서 외부 이미지까지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히 단호하다.
모든 책임은 경영진의 오판에서 비롯됐는데, 그들은 끝내 책임을 외면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노동조합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사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으니 잠시 조용히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더 크게 연대하고,
행정부·입법부·사법부에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 하는가?
대답 없는 질문을 품은 채, 복잡한 마음으로 또 한 주를 마무리했다.
9월 13일과 14일, 가족과의 시간
13일은 태어난 지 100일을 맞은 처조카를 축하하러 다녀왔다.
갓난아이가 집안에 있다는 건 참으로 큰 축복이다.
그 작은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당장 내 앞에 놓인 복잡한 일들이 모두 잊혀질 만큼 신비롭고 평화로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저 숨 쉬고 웃는 모습만으로 힐링이 되는 하루였다.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차장에서 차량 스토퍼를 보지 못해 넘어지고 구른 것이 옥의 티였다.
순간의 방심이 몸을 무겁게 했다.
14일은 어제의 여파 때문인지 목이 잘 돌아가지 않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결국 반강제로 하루종일 집에 머물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평소 같으면 마음이 조급했겠지만, 오히려 오늘은 감사했다.
다음 주가 다시 고단할 것을 알기에, 이렇게 강제로라도 멈추어 쉴 수 있는 시간이 내겐 꼭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