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2일 ~ 9월 28일 주간기록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이맘때처럼, 다시 우리 노사관계가 국회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단체협약은 ‘을사늑약’ 같았지만 어쨌든 체결됐고, 부당해고는 행정법원의 판결로까지 이어졌다.
대화는 여전히 막혀 있지만, 그 틈새에서 나는 기록(記錄)과 대화(對話), 두 개의 문을 동시에 두드리고 있었다.
9월 22일, 또 다시 국감시즌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오자, 작년에 우리 노사관계가 다뤄졌던 사안의 후속 확인 연락이 바쁘게 오간다.
“단체협약은 체결됐는가?”, “현재 상황은 어떤가?”
비슷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작년에는 행정법원 판결이 없었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만 있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올해는 행정법원 판결까지 추가됐다.
단체협약 역시 체결됐지만, 그 내용은 ‘을사늑약’에 비유될 만큼 불균형한 협약이었다.
그럼에도 “체결됐다”는 사실 하나로 상황을 업데이트해야 했다.
여전히 회사와의 대화창구는 막혀 있고, 공문만 오갈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란 요원하다.
국회의원실의 현황 요청은 늘 부담과 기대가 동시에 따라온다.
국정감사로 인해 회사와 또다시 갈등해야 하는 부담감,
그러나 연대의 손길과 여론의 압박을 통해 부당해고 철회와 노사관계 정상화를 이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렇게 또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9월 23일, 답답한 현실에 서서
오늘은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을 찾았다.
특별근로감독 청원은 여전히 ‘검토 중’이었다.
이번 방문은 부당해고 문제에 대한 협의를 위한 자리였다.
지난주 노정협의회에서 “방법을 모색해보겠다”던 담당자의 말처럼,
여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여전히 없었다.
결국 이게 본질이다. 법이 멈춘 자리에서 아무도 답을 내지 못하는 현실.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인정과 원직복귀명령은 분명 유효하다.
행정법원 판결에서도 이는 확인됐다.
그럼에도 회사는 항소했고, 노동위원회는 마지막 네 번째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절차만 남았다.
고용노동부 또한 법적 권한의 한계 속에서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노동 현실의 민낯이다.
노사가 동등하지 않은 운동장,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어진 경기장.
만일 대화의 문이 조금만 더 열려 있었다면,
우리는 법정이 아닌 교섭 테이블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노사관계에는 대화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차가운 법 조항이 대신하고 있다.
법은 정교하지 않고, 현실은 잔인하다.
오늘은 그 사실이 유난히 답답하게 다가온 하루였다.
9월 24일, 기록을 세상밖으로
오늘 아침 9시, 텀블벅 출판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지인들과 동료 위원장님들께 링크를 보내며 하루가 분주하게 흘렀다.
이번 텀블벅 프로젝트는 지난 3년의 기록을 정리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며 새로운 노사관계를 세워가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물론 노동조합의 시선에서 쓰인 기록이기에, 회사와 또 한 번의 부딪힘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명확히 남겨야 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지금은 무엇이 다른지,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회사는 언제든 법무법인이나 노무법인에 자문을 구해 수많은 사례를 검토하고 전략을 짠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그럴 여유가 없다.
노무법인과 자문계약을 맺기엔 재정이 빠듯하고,
노총이나 연맹도 상근 인력이 부족해 세세한 지원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사례집’은 세상에 나오기 힘들다.
현장의 위원장과 간부들이 그 사례를 온몸으로 겪지만,
기록할 여력도 없이 닳아 없어지거나,
현실에 굴복한 뒤엔 그 시절을 아픈 기억으로만 남겨두기 때문이다.
이번 출판 프로젝트가 꼭 성공하길 바란다.
우리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닿아, 다음 노동조합의 발걸음에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일지를 읽고,
한 번의 후원을 해주고, 또 두세 명에게 알린다면
그것만으로도 가능성이 있다.
9월 25일, 처음으로 함께 한 식사
5차 임금교섭일.
서서울공장에 도착해 회사 교섭위원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뭔가 묘한 공기가 감돌았다.
교섭 전, 회사 대표교섭위원이 말했다.
“오늘 교섭이 끝나면 함께 식사하죠.”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처음 있는 제안이었다.
당연히 수락했다. 그렇게 교섭이 시작됐다.
회사의 입장은 명확했다.
“임금교섭을 회사에 위임해 달라.”
노동조합은 즉답 대신 “내부 논의 후 답변하겠다”고 했다.
세부적인 이견은 여전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교섭장에는 ‘경청’과 ‘이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오갔다.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양해를 구하며 교섭을 마쳤다.
분명,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동안은 이렇게 어려웠을까.
교섭이 끝난 뒤 짧은 점심식사 자리.
그곳에는 ‘노사’가 아니라, 같은 회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장의 어려움, 경기 침체, 회사의 방향...이런 대화가 오갔다.
비록 우리의 입장이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식사 한 끼가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대화라는 단어가 현실이 된 하루.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했다.
9월 26일, 버티는 하루, 한 주를 충전해주는 저녁
한 주가 다이나믹하게 흘렀다.
그래서일까? 금요일인데 완전 지친다.
아침부터 차량 대여 일정이 있어 일찍 사무실로 향했다.
차량 청소와 주유를 마치고, 텀블벅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현재 후원 금액은 약 400만 원.
남은 목표는 700만 원이다.
텀블벅 특성상 첫 3일 이후에는 보합세를 보인다고 했다.
게다가 프로젝트 기간의 절반이 추석 연휴다.
22,000원의 금액이 높았던 걸까?
아니면 ‘노동조합’이라는 주제가 누군가에겐 부담이었을까?
도움을 주신 분들은 이미 이번 주에 대부분 후원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건,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
휴대전화 연락처를 뒤져가며 문자와 카톡을 보냈다.
“혹시 아직 참여하지 않으셨다면…”
서툰 글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은 늘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응원합니다”, “꼭 완성해 주세요”
그 짧은 메시지 몇 줄이 하루의 버팀목이 됐다.
저녁에는 차량을 인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동네 산책을 했다.
가벼운 대화, 시원한 바람, 느릿한 걸음 속에서
행복이 다시 충전되는 걸 느꼈다.
또 하루를, 또 한 주를 버틸 힘이 생겼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